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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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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그 영원한 현재성의 시작을 맛보다: <베로나의 두 신사>를 펼치며
우리는 왜 400년도 더 지난 영국 극작가의 작품을 지금 여기, 한국에서 읽어야 하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앞에서 비슷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의 4대 비극이나 유명 희극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베로나의 두 신사(Two Gentlemen of Verona)>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문학 세계로 들어서는 아주 매력적인 입구가 될 수 있다. 그의 천재성이 만개하기 전, 젊은 날의 열정과 실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초기작이기 때문이다. 마치 거장의 젊은 시절 스케치북을 들여다보는 듯한 설렘을 안겨준다고 할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들이 어떻게 한 천재 극작가의 손에서 다듬어져 보편적인 이야기로 승화되는지, 그 놀라운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베로나의 두 신사>는 제목 그대로 베로나 출신의 두 젊은 신사, 발렌타인과 프로테우스의 이야기다. 발렌타인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밀라노로 떠나고, 그곳에서 공작의 딸 실비아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베로나에 남아 줄리아와 열렬한 사랑을 나누던 프로테우스 역시 아버지의 명으로 밀라노로 향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밀라노에서 친구의 연인 실비아를 본 프로테우스가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 줄리아에 대한 맹세와 발렌타인에 대한 우정을 모두 저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배신, 연인들의 엇갈린 마음, 여주인공의 남장과 모험, 그리고 다소 급작스럽지만 극적인 화해. 이것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큰 줄거리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왜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꾼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는 인간 감정의 가장 미묘한 결을 포착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특히 프로테우스의 변심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줄리아를 향한 불타는 사랑을 맹세했지만, 실비아의 아름다움 앞에서 너무나 쉽게 흔들린다. 그의 내적 갈등은 다음과 같은 독백에서 처절하게 드러난다. 프로테우스: 줄리아를 떠나면 맹세를 어기는 것, 아름다운 실비아를 사랑하면 맹세를 어기는 것, 친구를 배신하면 크게 맹세를 어기는 것. 그런데 처음 맹세하게 해준 바로 그 힘이 나를 이 삼중 위증으로 자극한다. 사랑이 맹세하라 했고, 사랑이 배신하라 한다. 오, 달콤하게 유혹하는 사랑이여, 네가 죄를 지었다면 유혹당하는 네 신하에게 변명하는 법을 가르쳐다오! (제2막 제6장) 이 얼마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번뇌인가! 우리는 프로테우스를 비난하면서도, 그의 나약함 속에서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완벽하지 않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인간을 그려냄으로써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을 자아낸다. 사랑의 맹목성과 변덕스러움, 우정의 숭고함과 취약함이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시대 영국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또한 <베로나의 두 신사>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빛나는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을 예고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로테우스에게 버림받은 줄리아는 그를 찾아 밀라노로 떠나기로 결심하며 이렇게 말한다. 줄리아: 여자 옷이 아니라. 음탕한 남자들의 경박한 접근을 막고 싶거든. 친한 루체타, 평판 좋은 시동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준비해 줘. (제2막 제7장) 그녀는 세바스찬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남장하고 프로테우스의 시종이 되어 그의 곁을 지킨다. 이는 단순한 변장을 넘어, 사랑을 되찾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며, 당시 사회적 제약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실비아 역시 아버지의 강압적인 결혼 요구를 거부하고 발렌타인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주체적인 여성상은 이후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걸작에서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게 발전한다. 물론 초기작인 만큼 다소 미숙한 부분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프로테우스의 갑작스러운 참회와 발렌타인의 너무나도 쉬운 용서는 현대 독자들에게는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발렌타인이 모든 것을 용서하며 심지어 실비아를 프로테우스에게 양보하려는 듯한 대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다. 발렌타인: 그렇다면 나는 만족한다. 다시 한 번 너를 정직한 친구로 받아들이겠다. 회개로 만족하지 않는 자는 하늘에도 땅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이 기뻐하는 것은 참회니까. 회개를 통해 영원자의 분노가 누그러진다. 그리고 내 사랑이 순수하고 자유로움을 보이기 위해, 실비아에 대한 내 모든 것을 네게 준다. (제5막 제4장) 그러나 이러한 '결함'마저도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극적 장치와 주제를 실험했고, 그 경험은 훗날 <한여름 밤의 꿈>의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나 <십이야>의 유쾌한 남장 모티브, 그리고 4대 비극의 심오한 인간 탐구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셰익스피어 특유의 언어유희와 희극적 요소다. 특히 프로테우스의 하인 런스와 그의 개 크랩이 펼치는 만담은 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런스는 주인의 심부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의 개 크랩을 대신 선물로 보내려다 온갖 소동을 일으키는데, 그의 익살스러운 푸념은 당대 서민들의 삶과 유머 감각을 엿보게 한다. 런스: 이놈이 날 공작의 식탁 아래에서 신사들이 기르는 개 서너 마리와 함께 있게 만들었는데?축복이라고 해야 할까요??잠깐 오줌이나 누는 사이에 방 안 전체가 이놈 냄새로 진동했어요. "개를 내쫓아!" 누군가 소리쳤고, "저건 무슨 잡종이야?" 다른 사람이 말했으며, "채찍으로 쫓아내!" 세 번째 사람이 외쳤고, "교수형에 처해!" 공작이 명령했어요. (제4막 제4장) 이러한 희극적 장면들은 귀족들의 진지한 사랑 이야기와 대비를 이루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셰익스피어는 신분에 따라 운문과 산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하인들의 대사는 주로 현실적이고 비속한 산문으로 처리되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 번역본은 원문의 이러한 문체적 특징과 언어유희의 맛을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고전 번역의 어려움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원작이 지닌 시적 리듬과 극적 생동감, 그리고 문화적 뉘앙스까지 옮겨와야 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의 번역은 현대 한국 독자들이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매력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낡은'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탐구이기 때문이다. <베로나의 두 신사>는 그의 작품 세계 전체로 보면 시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시작 안에는 이미 인간의 사랑, 우정, 배신, 질투, 용서, 화해라는 영원한 주제들이 빛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400년 전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으로 웃고 울고 갈등했음을 깨닫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사회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명예를 중시하는 신사들의 모습, 여성의 지위와 역할, 결혼의 의미 등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발렌타인이 숲에서 만난 산적들의 두목이 되는 과정이나, 에글래무어 기사가 실비아의 도피를 돕는 모습 등은 중세적 기사도 정신과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이 혼재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 번역본은 원작의 연극적 힘과 문학적 깊이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눈으로 읽는 문학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목소리와 몸짓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 연극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연극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나 해설이 있었다면 더욱 풍부한 이해를 도왔겠지만, 본문 자체의 충실한 번역이 이를 상당 부분 보완하고 있다. (만약 작품 해설이 있다면 이 부분은 수정될 수 있다.) 결국, <베로나의 두 신사>를 읽는다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산맥을 오르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 그 길은 때로는 험난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 맛볼 수 있는 지적 희열과 감동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 한 권이 당신의 서가에 꽂히는 순간, 당신은 단순히 고전을 소장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나아가는 소중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젊은 셰익스피어의 뜨거운 숨결과 반짝이는 재치를 직접 느껴보시라. 아마 당신도 그의 마법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구매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 책은 당신의 지적 세계를 한 뼘 더 성장시켜줄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