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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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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묵은 소동극, 당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까? -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파헤치다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과연 누가 누구를 '길들인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길들임'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앞에서는 으레 "고전이니까 읽어야지"라는 의무감이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작품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 본성의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날카롭고도 유쾌한,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 문제작이다. 그리고 여기, 셰익스피어의 숨결을 생생하게 되살린 번역본이 우리 앞에 놓였다. 과연 이 책이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당신의 지성과 감성을 뒤흔들 수 있을지, 한번 차분히 따져보자.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17세기 영국은 격동의 시대였다. 르네상스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고, 인간 중심의 사상이 움트고 있었으며, 극장 문화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바로 그런 시대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성질 고약한 여자 카타리나가 페트루키오라는 남자에게 '길들여져' 순종적인 아내가 되는 과정을 그린 소극(farce)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플롯 이면에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다층적인 질문과 풍자가 숨겨져 있다. 우선, 주인공 카타리나를 보자. 그녀는 정말 그저 '말괄량이'일 뿐일까? 작품 초반, 아버지 밥티스타는 큰딸 카타리나를 시집보내기 전에는 작은딸 비앙카를 결혼시킬 수 없다고 선언한다. 구혼자들은 아름답고 얌전한 비앙카에게만 몰릴 뿐, 카타리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녀의 날카로운 말과 거친 행동은 어쩌면 자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대한 저항은 아니었을까? 이 번역본은 카타리나의 복잡한 심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외치는 이 대사를 보라. 카테리나: [밥티스타에게] 아버지, 제발 말씀해주세요. / 이 자들 사이에서 저를 전시품으로 만들 작정이신가요? (1막 1장) 얼마나 직설적이고 당돌한가. 그녀는 자신이 남성들의 구경거리나 거래 대상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분노한다. 이는 단순한 성격 파탄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의 절규로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 셰익스피어는 카타리나를 통해 당시 여성에게 가해지던 사회적 굴레를 은연중에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타리나를 '길들이겠다'고 나선 페트루키오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돈 많은 아내를 얻기 위해 파도바에 온 베로나의 신사다. 그의 '길들이기' 방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카타리나를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그녀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비틀고 부정한다. 해를 달이라 우기고, 늙은 남자를 아름다운 처녀라고 부르며 카타리나에게 동조를 강요하는 장면은 희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페트루키오: 저는 그렇게 밝게 빛나는 것이 달이라고 말했소. 캐서린: 전 그렇게 밝게 빛나는 건 태양이라는 걸 알아요. 페트루키오: 자, 이제 내 어머니의 아들, 즉 나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건대, / 그것은 달이거나, 별이거나, 내가 원하는 것이 될 거요. / 아니면 내가 당신 아버지 집으로 가기 전에 그럴 테니. (4막 5장) 이 대목에서 페트루키오의 행동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한 남성적 지배욕의 발현인가, 아니면 카타리나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한 극단적인 처방인가? 혹은 세상의 부조리함과 관습의 허위를 깨닫게 하려는 일종의 '충격 요법'은 아니었을까? 셰익스피어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 기상천외한 '길들이기' 과정에서 두 인물이 서로에게 격렬하게 부딪히고 반응하며,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낼 뿐이다. 독자는 이 과정에서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문득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작품의 백미이자 가장 큰 논란거리는 단연 카타리나의 마지막 장광설이다. 모든 소동이 끝난 후, 잔치 자리에서 페트루키오의 명령에 순순히 응한 카타리나는 다른 아내들에게 아내로서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도리를 설파한다. 캐서린: 당신의 남편은 당신의 주인이자, 생명이자, 보호자, / 당신의 머리, 당신의 군주입니다. 그는 당신을 돌보고, / 당신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침니다... / 에이, 그만! 그 위협적이고 불친절한 미간 찡그림을 풀고, / 그 경멸적인 눈빛으로 / 당신의 주인, 왕, 통치자를 상처 입히지 마세요... / 우리의 몸이 부드럽고 약하고 매끄러운 이유, / 세상의 수고와 고난에 맞지 않는 이유는 / 우리의 부드러운 본성과 마음이 / 우리의 외적인 부분과 잘 맞아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 자, 이리 오세요, 고집불통에 무능한 벌레들! / 내 마음도 한때는 당신들 만큼이나 컸고, / 내 심장도 그만큼 크고, 아마 이성도 더 많아 / 말대꾸에 말대꾸, 찡그림에 찡그림으로 맞섰죠. / 하지만 이제 보니 우리의 창은 지푸라기에 불과하고, / 우리의 힘은 약하고, 약함은 비교할 수 없으며, / 가장 강해 보이는 것이 실은 가장 약한 것입니다. / 그러니 오만함을 내려놓으세요, 쓸모없으니까, / 그리고 당신의 손을 남편의 발 아래 두세요. / 이 의무의 표시로, 그가 원한다면, / 내 손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위안이 되길. (5막 2장) 이 대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카타리나는 완벽하게 '길들여진' 여성, 가부장제의 이상적인 아내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렸을 리 없다. 이 연설에는 수많은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페트루키오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얻은 깨달음일 수도, 혹은 살아남기 위한 그녀만의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의 언어를 역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도 한때는 당신들 만큼이나 컸고"라는 구절은 그녀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투쟁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이 연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번역본은 카타리나의 목소리에 담긴 복잡한 뉘앙스와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고 독자에게 전달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원문의 리듬과 극적인 힘을 살리면서도 현대 한국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윤문한 대사들은 마치 무대 위 배우의 생생한 육성처럼 다가온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언어와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언어는 풍부하고, 때로는 현란하며, 때로는 지극히 소박하다. 운문과 산문이 절묘하게 교차하고, 기발한 언어유희와 은유가 넘실댄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역시 예외는 아니다. 페트루키오와 하인 그루미오가 주고받는 만담 같은 대화, 카타리나의 날 선 독설, 학자로 변장한 루첸티오의 현학적인 사랑 고백 등은 셰익스피어 언어의 향연을 보여준다. 좋은 번역은 이러한 언어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야 한다. 이 번역본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셰익스피어 특유의 극적 긴장감과 시적 아름다움을 한국어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그루미오가 페트루키오의 "문 좀 두드려라(knock at the gate)"는 명령을 사람을 "두들겨 패라(knock me here soundly)"로 오해하며 벌이는 소동(2막 2장)은 원문의 희극성을 잘 살린 번역의 좋은 예다. 페트루키오: 이 녀석, 여기를 두드리라니까, 제대로 두드려! 그루미오: 여기를 두드리라고요, 주인님? 왜요, 주인님, 제가 뭐길래 여기서 주인님을 두드려야 하나요? 이처럼 살아있는 대사들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글로브 극장의 관객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서막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슬라이의 이야기는 극중극 형식을 통해 '현실과 환상', '정체성'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단골 주제를 슬쩍 내비치며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이 번역은 이러한 메타연극적 장치 또한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결국,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젠더 역할, 부부 관계,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관습 사이의 갈등이라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다. 물론 400년 전의 가치관이 현대 독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이 작품을 읽고 토론해야 하는 이유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쉬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인간과 사회의 복잡한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며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한 번역본을 넘어,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번역자의 깊이 있는 이해와 섬세한 언어 감각은 원작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독자에게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 그리고 당시의 역사 문화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독자들의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셰익스피어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편견을 깨보길 권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당신을 웃기고, 당황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왜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꾼으로 불리는지, 그의 작품이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자, 이제 400년 전 파도바의 한바탕 소동 속으로 뛰어들어, 유쾌하고도 치열한 지적 탐험을 시작해보시라. 당신의 심장이 다시 한번 뜨겁게 뛸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