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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서문 비너스와 아도니스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책 속의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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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 곁에 다시 피어난 '사랑'의 원형(原型) 우리는 왜 고전을 읽는가? 특히 셰익스피어라는 이름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영문학의 정점이자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는 찬사. 하지만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와 고풍스러운 언어는 때로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단언컨대, 셰익스피어를 읽는 경험은 박제된 유물을 감상하는 행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의 드라마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 곁을 찾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그의 극작품이 아닌, 그의 문학적 여정의 첫 공식 출간작이자 매혹적인 서사시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발표한 1593년은 런던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극장들이 문을 닫았던 시기다. 젊은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잠시 펜을 돌려, 당시 유행하던 신화 주제의 에로틱한 서사시에 도전한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후원자였던 사우스햄튼 백작 헨리 리오슬리에게 헌정하며 "제 창작 활동의 첫 결실"이라 겸손히 밝히고 있다. 그의 서문에서는 "만약 제 창작 활동의 첫 결실이 형편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토록 고귀한 분을 후원자로 모신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신인 작가의 간절함과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이 "첫 결실"은 결코 형편없지 않았다. 오히려 당대 독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시인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드높였고, 그의 문학적 야심과 천재성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미의 여신 비너스가 아름다운 소년 아도니스에게 품은 열정적이고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셰익스피어는 단순한 신화 재현을 넘어 인간 욕망의 강렬함, 순수와 유혹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아름다움의 덧없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그만의 풍부한 언어로 직조해낸다. 이 시에서 우리는 훗날 그의 위대한 비극과 희극에서 만개할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언어적 기교의 초기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속 비너스는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구애자로 등장한다. 그녀는 아도니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를 소유하고자 온갖 감언이설과 육체적 유혹을 시도한다. 그녀의 열정은 때로는 절박하고, 때로는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아도니스에게 자손을 남길 것을 종용하며 순결을 비판하는 대목을 보자. "그러므로 열매 없는 순결을 무시하고, 사랑을 모르는 베스탈 처녀들과 자기애에 빠진 수녀들, 지상에 딸들과 아들들의 메마르고 불모의 부족을 만들 자들을 무시하고, 낭비하라: 밤에 타는 등불은 세상에 빛을 주려고 자신의 기름을 말려버리네." 이 대목에서 비너스는 생산과 번식을 자연의 섭리이자 의무로 제시하며, 아도니스의 순결을 '메마르고 불모의 부족'을 만드는 행위로, 심지어 '삼키는 무덤'에 비유하며 몰아세운다.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생명력에 대한 찬양과 인간 중심적 사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욕망에 눈먼 인물의 자기 합리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비너스의 논리는 끈질기고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반면, 아도니스는 사냥에만 몰두하는 순수한 소년으로, 비너스의 열정적인 구애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비너스가 제시하는 사랑을 '정욕'으로 규정하며, 진정한 사랑과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려 한다. 그의 항변은 젊은이다운 치기 어린 반항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예리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마라, 사랑은 하늘로 도망쳤으니, 땀 흘리는 정욕이 지상에서 그의 이름을 찬탈했기에; 그 단순한 겉모습 아래 그는 신선한 아름다움을 먹어치우고, 비난으로 그것을 더럽혀왔으니; ... 사랑은 비 온 뒤 햇빛처럼 위로하지만, 정욕의 결과는 해 뒤의 폭풍; 사랑의 온화한 봄은 언제나 신선하게 남지만, 정욕의 겨울은 여름이 반도 지나기 전에 온다네. 사랑은 과하지 않지만, 정욕은 탐식가처럼 죽고; 사랑은 온통 진실, 정욕은 거짓으로 가득하네." 아도니스는 사랑과 정욕을 빛과 어둠, 봄과 겨울, 진실과 거짓으로 대비시키며 비너스의 감정을 '땀 흘리는 정욕'이자 '거짓으로 가득'한 것이라 일갈한다. 그의 논리는 셰익스피어가 이미 젊은 시절부터 인간 감정의 복잡한 스펙트럼과 그 이중성에 대해 깊이 사유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햄릿'의 고뇌, '오셀로'의 질투, '로미오와 줄리엣'의 맹목적인 사랑 등 그의 후기작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감정의 원형적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아도니스는 비너스의 간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냥을 나섰다가 멧돼지에게 목숨을 잃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너스의 절망과 슬픔은 시 전체를 뒤덮는다. 그녀의 탄식은 단순한 개인적 비탄을 넘어, 아름다움의 소멸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비극적 예언으로 확장된다. "그대가 죽었으니, 보라 여기서 내가 예언하노니, 슬프이 앞으로 사랑에 따르리라: 그것은 질투에 의해 섬김을 받을 것이고, 달콤한 시작을 찾지만 불쾌한 끝을 맞이하리라; 결코 평등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높거나 낮아서, 모든 사랑의 즐거움이 그의 슬픔에 맞지 못하리라." 이 예언은 아도니스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비극을 통해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앞으로 겪게 될 시련과 고통을 암시한다. 질투, 불균형, 불행한 결말.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이후 그의 극작품에서 끊임없이 탐구하게 될 사랑의 어두운 단면들이다. 비너스의 절규는 사랑의 기쁨 뒤에 숨겨진 비극적 가능성을 통찰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 새로운 번역본은 셰익스피어 초기 시 세계의 아름다움을 현대 한국 독자들에게 섬세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원문의 화려한 수사와 감각적인 이미지,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비유를 살리면서도, 오늘의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다듬어져 있다. 특히 각주를 통해 당시의 문화적 배경이나 생소한 어휘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서문의 "카스탈리아 샘물"에 대한 주석은 단순한 지명 설명을 넘어 시적 영감의 원천이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짚어준다.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거대한 문학 세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입구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욕망과 순수,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소멸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주제들을 젊은 시인 특유의 예리한 시선과 풍부한 언어적 감각으로 탐구한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훗날 세계 문학사를 뒤흔들게 될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초기 열정과 재능,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탐구가 이미 이 시점에서부터 치열하게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왜 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지, 그의 서사시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통해 다시 한번 실감하길 권한다. 이 한 권의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숨결과 함께,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의 다양한 얼굴, 그리고 인간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탐색하는 지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의 극작품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 이 매혹적인 서사시를 통해, 우리는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우주의 또 다른 별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첫 결실"이 얼마나 풍요로운 수확으로 이어졌는지, 그 시작을 함께 음미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