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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제2부: 부(富)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책 속의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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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는 왜 고전을 읽는가. 150년도 더 지난 런던의 이야기가 21세기 서울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 2부를 펼쳐 들었다. 이 책의 부제는 ‘부(富)’다. 그렇다. 이것은 돈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돈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고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놀랍도록 정교한 해부도다. 1부에서 평생을 마셜시 채무자 감옥에서 보냈던 도릿 가족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감옥의 문을 나선다. 가난이라는 물리적 감옥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에게 행복이 찾아왔을까? 디킨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시대에도 유효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부는 과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부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 되는 것은 아닌가? 『작은 도릿』 2부는 바로 이 아이러니에 대한 집요한 탐구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은 단연 ‘마셜시의 아버지’라 불렸던 윌리엄 도릿이다. 그는 부자가 되자마자 과거의 자신을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이제 돈이 아니라 ‘체면’과 ‘품위’라는 새로운 감옥에 갇힌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지위를 의식하고, 하인들을 억누르며, 과거를 상기시키는 모든 것을 병적으로 회피한다. 딸 에이미가 산에서 조난당한 고완 부인을 도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이렇게 질책한다. “이제 너는... 흠... 지켜야 할 큰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 큰 지위는 너 혼자만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 나와... 하... 흠... 우리가 차지하는 것이다. 우리 말이다. 이제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있지만, 특히 이 가족에게는... 하...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존경받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존경받게 만드는 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부양가족들이 우리를 존경하려면... 하... 거리를 두고... 흠... 억눌러 두어야 한다.” 이 대사는 그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유로워졌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는 더 정교한 규칙들을 만들어낸다. 부자가 된 도릿 씨의 모습은, 오늘날 갑작스러운 성공 이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은 사지 못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모든 것을 잃고 정신이 무너진 그가 마셜시의 아버지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부의 허망함에 대한 디킨스의 가장 통렬한 논평이다. 디킨스의 카메라는 도릿 가족을 넘어 19세기 영국 사회 전체를 비춘다. 그가 그려내는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 사회는 거대한 ‘겉치레와 허영’의 박람회장이다. 그 중심에는 제너럴 부인이라는 희대의 캐릭터가 있다. 그녀는 도릿가의 딸들을 교육하기 위해 고용된 가정교사지만, 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다. 오직 ‘표면 형성(surface-forming)’ 기술뿐이다. 그녀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사에 집약되어 있다. “‘아빠’라는 말은 게다가 입술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줘요. 아빠, 감자, 가금류, 자두, 프리즘은 모두 입술에 아주 좋은 단어들이에요. 특히 자두와 프리즘이요. 품행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가끔씩 사교 모임에서?예를 들어, 방에 들어갈 때?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아빠, 감자, 가금류, 자두와 프리즘, 자두와 프리즘’이라고요.” 이 우스꽝스러운 주문은 실로 놀라운 상징이다. 의미와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입술 모양, 즉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디킨스가 조롱하는 상류 사회의 본질이다. 모든 불쾌한 것, 불편한 진실을 광택(varnish)으로 덮어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위선. 제너럴 부인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사회 시스템 그 자체의 의인화다. 이 위선적인 사회의 정점에는 금융 거물 머들 씨가 있다. 그는 전 유럽의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쥔 인물이다. 모두가 그를 숭배하고, 그의 이름은 곧 신용이자 권력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그의 사업은 거대하지만 그 실체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이것이 디킨스의 천재성이다. 그는 19세기 금융 자본주의의 투기적 속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광풍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머들의 존재는 2008년 금융 위기를, 혹은 오늘날 우리를 현혹하는 수많은 투기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실체 없는 믿음이 어떻게 거대한 부의 제국을 건설하고, 또 어떻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가. 『작은 도릿』은 단순한 사회 소설을 넘어,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에 대한 예리한 경제 비평서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겉치레와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소설의 심장, 작은 도릿 에이미다. 그녀는 부자가 된 후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하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타인을 위한 헌신과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부유한 환경은 그녀에게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 된다. 그녀가 아서 클레넘에게 보낸 편지는 그녀의 변치 않는 영혼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제가 당신께 기도하고 간청하는 것은, 저를 부잣집 딸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거예요. … 저를 당신이 그토록 다정하게 보호해주신 그 작고 초라한 소녀로만 기억해 주세요. 해진 옷을 비로부터 막아주시고, 젖은 발을 당신의 불가에서 말려주신 그 소녀로요. 저를 생각하실 때면?저를 생각하신다면?언제나 변함없는 제 진심 어린 애정과 헌신적인 감사와 함께 생각해 주세요.” 그녀는 돈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그녀는 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존재한다. 결국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도릿 가문이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모두가 절망하지만 오직 그녀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서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재산을 가지고 가장 존경받는 귀부인이 되는 것보다, 여기서 당신과 함께 평생을 보내며 매일 나가서 우리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게 더 좋아요." 이것이 디킨스가 ‘부’라는 거대한 환상에 맞서 제시하는 유일한 대안, 즉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다. 이토록 깊고 방대한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킨스 특유의 만연체 문장, 신랄한 풍자와 유머, 각 계층의 생생한 말투를 살리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이 번역본은 그 어려운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알프스의 포도 수확 장면을 묘사하는 감각적인 문장부터,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 숨 쉬는 대화까지, 원작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고완과 팁 도릿이 나누는 재치 있는 설전이나, 제너럴 부인의 위선적인 말투는 번역가의 깊은 고민과 뛰어난 언어 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150년 전 런던의 목소리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듣는 듯한 생생한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작은 도릿』 2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무엇인가. 그것은 돈인가, 체면인가, 아니면 헛된 욕망인가. 디킨스는 부유해진 도릿 가족이 유럽을 떠도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마셜시보다 더 거대하고 정교한 ‘사회의 감옥’에 갇혔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작은 도릿 에이미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는다. 이 역설이야말로 디킨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진정한 부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으며, 진정한 자유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찰스 디킨스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당신은 아마 당신의 삶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벽을 허물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는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