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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머리말 제1장 대법원에서 제2장 패션계에서 제3장 진전 제4장 망원경 자선사업 제5장 아침 모험 제6장 집에서 마음 편히 제7장 유령의 산책로 제8장 많은 죄를 덮어주다 제9장 표지판과 징조들 제10장 법률 서기 제11장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제12장 감시 중 제13장 에스더의 이야기 제14장 태도 제15장 벨 야드 제16장 톰 올 얼론스 제17장 에스더의 이야기 제18장 데드록 부인 제19장 계속 나아가다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책 속의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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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디킨스의 위대한 질문, 《황폐한 집》 세상은 안개 같다. 때로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길을 잃는다. 법과 제도, 관료주의와 사회적 관습이라는 이름의 짙은 안개 속에서 개인은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거대한 톱니바퀴는 과연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나를 집어삼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17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도착한 찰스 디킨스의 걸작 《황폐한 집》을 펼쳐야 한다. 이 책은 단순한 19세기 영국 소설이 아니라, 거대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가장 정교하고 통렬한 해부도이기 때문이다. 디킨스는 소설의 첫 문장부터 독자의 멱살을 잡고 19세기 런던의 심장부로, 그 안개의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간다. 이 번역본은 그 압도적인 도입부를 탁월하게 살려냈다. 런던. 미카엘마스 학기가 막 끝났고, 대법관이 링컨스 인 홀에 앉아 있다. 무자비한 11월 날씨다. 거리에는 마치 방금 전 대홍수가 물러간 것처럼 진흙이 가득하다. (...)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다. 푸른 작은 섬들과 초원 사이를 흐르는 강 위쪽으로도 안개가 자욱하고, 거대하고 더러운 도시의 선박들과 강변 오염물질들 사이로 굴러가는 강 아래쪽으로도 안개가 자욱하다. 에식스 습지에도 안개, 켄트 고지에도 안개. 이 안개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다. 그것은 대법원(Court of Chancery)이라는 사법 시스템의 모호함이며, 등장인물들의 도덕적 혼란이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불투명성 그 자체다. 디킨스는 이 안개를 통해 묻는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가? 안개 속에서는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다. 소설의 중심에는 ‘자앤다이스 대 자앤다이스’라는 전설적인 유산 소송이 있다. 시작이 언제였는지,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 소송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관련자들의 삶을 대물림하며 집어삼킨다. 아무리 짙은 안개도, 아무리 깊은 진흙과 수렁도 이 대법원이 오늘 하늘과 땅이 보는 앞에서 보여주는 더듬거리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에는 미치지 못한다. 가장 지독한 늙은 죄인 같은 이 대법원의 모습에는. 디킨스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해 크게 두 개의 서사 축을 설정하고, 이를 정교하게 엮어 나간다. 하나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는 상류사회의 위선과 법조계의 부패다.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고아 소녀 ‘에스더 서머슨’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개인의 성장담이다. 첫 번째 축의 중심에는 데드록 부인이 있다. 패션계의 정점에서 권태에 빠진 그녀의 삶은 화려하지만 공허하다.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모든 것을 가졌지만, 어떤 비밀의 그림자가 그녀를 쫓는다. 디킨스는 이 비밀의 실마리를 한 장의 법률 문서 필체에서 드러내며 소설 전체를 관통할 미스터리의 서막을 연다. 데드록 부인의 고고한 세계와 런던 뒷골목의 비참한 현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따라가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두 번째 축의 주인공 에스더는 자신의 출생 자체가 ‘치욕’이라는 대모의 낙인 속에서 자란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늘진 삶 속에서도 선함과 의무를 다하려는 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소송의 또 다른 상속자인 아름다운 에이다와 변덕스럽지만 선량한 리처드를 만난다. 이 젊은이들의 운명은 ‘자앤다이스 대 자앤다이스’라는 거대한 맷돌에 의해 어떻게 갈려 나가는가? 디킨스는 이들을 통해 시스템의 폭력이 개인의 희망과 사랑, 미래를 얼마나 무참히 짓밟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사회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디킨스는 당대의 위선적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해 ‘망원경 자선사업(telescopic philanthrop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바로 젤리비 부인이다. 그녀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돕는다는 거창한 명분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이 지하실 난간에 머리가 끼고, 굶주리고, 방치되는 것은 외면한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먼 곳의 불행에는 쉽게 연대하지만, 바로 옆 이웃의 고통에는 무심한 우리의 모습이 젤리비 부인의 초상에 겹쳐 보인다. 해럴드 스킴폴이라는 인물 역시 압권이다. 그는 자신을 ‘어린아이’라 칭하며 세상의 모든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돈과 시간에 대한 관념이 없다고 천진난만하게 고백하며, 예술과 아름다움만을 탐닉하는 그의 모습은 얼핏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가장 세련되고 이기적인 기생(寄生) 논리다. 빚 때문에 체포되었을 때조차, 그는 자신의 곤경을 주변 사람들의 ‘관대함을 발휘할 기회’로 포장한다. “나는 당신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당신들의 힘을 부러워합니다. 그것은 내가 열광할 만한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천박한 감사를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관대함이라는 사치를 누릴 기회를 주는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인물들을 통해 디킨스는 19세기 영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거대 담론에 빠져 바로 앞의 인간을 보지 못하는 지식인, 아름다운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예술가, 자신의 고통에만 함몰된 소송 당사자들,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에서 이름조차 없이 살아가는 ‘톰 올 얼론스’의 부랑아들까지. 특히 글도 모르고, 부모도 없고, 세상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움직이라”는 명령만 받으며 떠도는 소년 ‘조’의 모습은 가슴을 친다. 그는 시스템이 낳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희생자이며, 사회가 한 인간을 얼마나 철저히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황폐한 집》 1권은 이 모든 인물과 사건들을 거대한 태피스트리처럼 엮어내며 우리를 서서히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끈다. 우리는 안개 자욱한 런던의 법정과 귀족 저택, 그리고 비참한 뒷골목을 오가며 얽히고설킨 관계의 실타래를 따라간다. 과연 에스더의 출생의 비밀은 무엇인가? 데드록 부인이 감추려는 과거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런던의 가장 비천한 법률 서기와 연결되는가? ‘자앤다이스 대 자앤다이스’ 소송은 과연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모든 관련자를 파멸로 이끈 후에야 끝날 것인가?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챈서리 법원’은 무엇인가. 절차만 있고 결과는 없는 정치, 과정만 있고 책임은 없는 행정, 규정만 있고 사람은 없는 관료주의가 바로 우리 시대의 ‘자앤다이스 소송’은 아닌가. 디킨스가 그린 ‘망원경 자선사업’의 위선은 SNS 시대에 더욱 교묘한 형태로 진화하지 않았는가. 이 거대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것은 하나의 장대한 지적 탐험이다. 훌륭한 번역은 그 탐험의 길을 열어주는 충실한 안내자다. 이 번역본은 디킨스 특유의 만연체 문장을 유려하게 살리면서도, 현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의 호흡을 조절했다. 등장인물의 개성 넘치는 말투와 시대적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170년 전 런던의 안개를 헤치고 디킨스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제 1권의 막이 내렸다. 우리는 이제 막 안개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수많은 복선과 미스터리가 독자를 기다린다. 감히 말하건대, 이 위대한 여정에 동참하는 것은 단순한 독서 행위를 넘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비춰보는 값진 지적 경험이 될 것이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가장 믿음직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부디 이 탐험을 시작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