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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1857년판 서문 제1부 빈곤 작가 소개 작가 연보 책 속의 역사 문화 산책 작품 해설 판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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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시대, 우리 시대의 거울 -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을 읽다
우리는 왜 21세기에 19세기 영국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그것도 1,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말이다. 시간이 돈이고 효율이 미덕인 시대에, 고전 읽기는 한가한 지적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찰스 디킨스의 『작은 도릿』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이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다. 디킨스는 이 작품을 통해 ‘감옥’이라는 하나의 은유로 인간 사회의 모든 구속과 부조리를 남김없이 해부한다. 『작은 도릿』의 세계는 온통 감옥이다. 첫 장부터 우리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찌는 듯한 감옥에서 음험한 살인자 리고와 순박한 밀수꾼 존 밥티스트를 만난다. 디킨스는 숨 막히는 더위와 감금된 공간의 썩어가는 공기를 실감 나게 묘사하며 이야기의 문을 연다. 30년 전 어느 날, 마르세유는 햇볕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 그곳의 모든 것에는 감옥의 오염이 배어 있었다. 갇힌 공기, 갇힌 빛, 갇힌 습기, 갇힌 사람들이 모두 감금으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이 기력을 잃고 야위어갔듯이, 쇠는 녹슬고 돌은 미끄덩거렸으며 나무는 썩었고 공기는 탁했고 빛은 어두웠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소설의 중심에는 런던의 ‘마셜시 채무자 감옥’이 있다. 이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소설의 모든 인물과 사건을 낳고 길러내는 자궁과도 같은 공간이다. 감옥에서 태어나 ‘마셜시의 아이’로 불리는 작은 여주인공 에이미 도릿. 그리고 20년 넘게 수감되어 감옥의 관습과 허위의식에 완전히 동화된 채 ‘마셜시의 아버지’라는 공허한 칭호에 집착하는 그녀의 아버지 윌리엄 도릿. 이들 부녀의 기이한 관계는 감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뒤틀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슴 아픈 초상이다. 그러나 디킨스가 말하는 감옥은 높은 담장과 쇠창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아서 클레넘은 20년간의 해외 유배 생활을 마치고 런던의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맞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냉혹한 규율과 어두운 비밀뿐이다. 그의 어머니 클레넘 부인이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지배하는 그 방은 마셜시보다 더 답답한 감옥이다. 일요일마다 사람들의 영혼을 짓누르는 엄숙주의, 위선적인 자선,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건 인물들의 내면세계 모두가 보이지 않는 감옥을 이룬다. 이 수많은 감옥들 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우회청(Circumlocution Office)’이다. 디킨스가 창조해낸 이 가상의 정부 부처는 ‘어떻게든 일을 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는 관료주의의 총본산이다. 이곳은 온갖 서류와 형식, 절차의 미로 속에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국가의 활력을 마비시키는 거대한 감옥이다. 정직한 발명가 다니엘 도이스가 자신의 중요한 발명품을 실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12년 동안 어떻게 좌절하고 모욕당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관료주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고발로 읽힌다. 바나클 가문으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이기적인 지배계층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민낯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업무가 그 부서에 정식으로 접수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 영리한 젊은 바나클이 계속했다. "그 부서를 통해 수시로 지켜볼 수 있을 거예요. 이 부서에 정식으로 접수되면, 이 부서를 통해 수시로 지켜봐야 해요. 우리는 그것을 좌우로 회부해야 할 거고, 어디든 회부할 때마다 찾아봐야 해요. 언제든 우리에게 다시 오면, 우리를 찾아보는 게 좋겠어요. 어디든 막히면, 좀 밀어줘야 해요. 다른 부서에 그것에 대해 편지를 쓰고, 또 이 부서에 그것에 대해 편지를 써도 만족스러운 답을 듣지 못하면, 계속 편지를 쓰는 게 좋겠어요." 이처럼 『작은 도릿』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디킨스는 사회 비판 소설의 대가답게, 당대 영국의 법률, 행정, 금융, 종교의 위선을 남김없이 폭로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단순한 사회 고발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의 심장은 단연 ‘작은 도릿’ 에이미와 아서 클레넘의 관계에 있다. 감옥에서 태어나 평생을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작은 소녀. 그녀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 가장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녀의 연민과 인내, 그리고 조용한 용기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빛이다. 한편, 혹독한 유년 시절과 가족의 비밀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중년의 아서 클레넘은 이 작은 소녀를 통해 점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두 사람의 만남은 거대한 부조리와 맞서는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안을 선사한다. 디킨스의 인물 창조 능력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과거의 로맨스에 집착하는 사랑스러운 수다쟁이 플로라 핀칭, 석탄 증기기관차처럼 킁킁거리며 런던의 뒷골목을 누비는 억척스러운 임대료 수금원 팬크스, 그리고 독선적인 자애로움으로 빛나는 머리를 하고 앉아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가부장 캐스비까지, 그의 펜 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은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작은 도릿』 1부는 이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의 관계와 비밀의 서막을 여는 ‘빈곤’의 이야기다. 마셜시 감옥과 우회청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감옥을 축으로, 인물들은 각자의 운명에 묶인 채 서로를 스쳐 지나가거나 충돌한다. 이야기는 때로는 어둡고 무겁지만, 디킨스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독자들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번역본은 디킨스의 이 빽빽하고 유려한 문체를 섬세하게 살려내어, 19세기 런던의 풍경과 소리, 냄새를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말투와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충실히 옮기면서도 현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역자의 노고가 돋보인다. 결국, 『작은 도릿』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감옥에 갇혀 있는가? 그것은 가난의 감옥인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의 감옥인가, 아니면 과거의 상처와 그릇된 신념이 만든 마음의 감옥인가. 디킨스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연민과 사랑, 그리고 진실을 향한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감옥의 벽도 허물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19세기 런던의 이야기가 실은 21세기 서울의 우리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위대한 고전이란 이렇듯 시간을 뛰어넘어 인간 조건의 보편적 진실을 꿰뚫어 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작은 도릿』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하나의 교과서다. 이 지적이고 감동적인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