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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국가, 다양한 환경을 넘어 다른 여성들과 손을 맞잡는 것. 그러한 관점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반역을 그리는 SF. 성별의 차이를 넘어서 연대를 지향하는 SF. 그것이 바로 이 앤솔러지의 주제입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희망’에 관한 소설집입니다.
---「여는 글(이노우에 마사히코)」중에서 그것은 이상한 재판이었다. 법정에 피고 측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피고도, 피고 측 법률대리인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판사는 조금 당혹한 기색으로 잠시 기다리다가 변론 기일을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첫 공판은 그렇게 끝났다. ---「지구와 함께(정보라)」중에서 덜컹, 소리가 났다. 놀랍게도 여자는 또 그 고물 안에 들어가 있었다. 겁먹은 쥐처럼 생긴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그 무릎 위에 역시 음식으로 보이는 포장지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일레인이라면 당연히 희희낙락 이 자 리에서 여자를 살육했을 것이다. “죽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물어보자 여자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어제 뒤집어썼던 스프레이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어제는 잘도 그랬겠다. 덕분에 목욕을 세 번이나 했어.” “……날 죽이러 왔어?” 또다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근무가 끝났는데 굳이 일을 할 이유는 없다. “하필 지금은 비번이라.” ---「군인과 마녀(오타니 아키라)」중에서 승희는 늘 핀이었고 원은 언제나 러너였다. 오직 일란성 쌍둥이들만이 자아분열이라는 치명적 부작용 없이 다른 시간선의 ‘자신’에게 진입할 수 있다는 연구가 정설로 굳어진 이후, 시간여행국에서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일란성 쌍둥이를 다 긁어모으다 못해 시간요원으로 키울 어린아이들을 직접 길러내기 시작했다. 승희와 승원은 그렇게 처음부터 시간요원이 될 운명으로 배양된 쌍둥이 자매이자 시간여행 파트너였다. ---「핀 앤 러너 패러독스(김초엽)」중에서 아아, 나는 당신이 좋다. 나는 젓가락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을 불끈 쥐고 작게 휘두르며 목소리를 쥐어짰다. 바, 로, 그, 거, 야. 내가 선배인데 실력으로 졌어. 용서 못 해. 죽여버려야지. 계약 금액을 그려놓는 막대그래프의 막대기로 두들겨 패서 죽일거야. 당신은 웃으며 그럼 오늘도 공부를 했어야지 하고 눈치없는 소리를 한다. ---「당은 나와 여지를 나눠 먹는다(요네자와 호노부)」중에서 우리는 누구를 자매로 알아볼 것인지,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어떤 규칙을 어기고 무엇을 새로 써야 할 것인지. 이제 그 질문은 이 책을 읽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닫는 글(해도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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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연결되고, 연대를 통해 세계를 바꾸다!
한일 SF가 작가들이 함께 완성한 열여섯 편의 ‘연대와 화합의 목소리’ 『시스터펑크 유니언』에 수록된 열여섯 편의 작품은 ‘시스터펑크’라는 하나의 주제에서 출발하지만, 저마다 전혀 다른 세계와 관계의 형태를 선보인다. 반권위주의와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펑크’에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 관계와 돌봄의 힘을 뜻하는 ‘시스터’를 결합한 이 주제는 작품마다 새로운 이야기로 변주된다. 인간의 몸과 과학 기술, 인류의 기억과 도구로서의 언어를 둘러싼 이야기부터 제도와 권력, 정체성과 연대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까지. 작가들은 시대와 국가, 성별과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 서로를 자매이자 동료로 선택하는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 한편 이 작품들은 ‘시스터펑크’를 하나의 아름다운 구호나 완성된 정의로 고정하지 않는다. 제도가 갈라놓은 존재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순간을 그리는 동시에, 연대 안에 존재하는 배타성과 위험까지도 정면으로 마주한다. 누가 ‘시스터’가 될 수 있는지, 무엇을 ‘펑크’적 행동이라 부를 수 있는지, 차이로 타인을 배제하지 않고 서로를 동료로 선택하고 지키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렇게 열여섯 편의 작품은 연대가 단순히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세계의 규칙을 새롭게 써 나가는 구체적인 실천임을 보여준다. 연대하는 이야기, 실천으로 완성된 연대 두 나라의 언어와 상상력이 한 권의 책이 되다! 『시스터펑크 유니언』은 한국과 일본의 작가들이 국경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주제를 함께 탐구한 문학 프로젝트다. 열여섯 편의 소설이 저마다 다른 세계와 관계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그려냈다면, 책을 만드는 과정은 서로의 관점과 경험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실천이었다. 기획과 집필, 심사, 번역, 편집, 출간에 이르는 전 과정은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현대문학과 일본의 가와데쇼보신샤가 출판을 맡았으며, 한국 작품은 일본SF작가클럽이, 일본 작품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가 교차 심사했다. 공개 모집 작품은 이름과 경력을 가린 블라인드 시놉시스 심사를 통해 선정해 명성보다 작품성과 기획 취지, ‘시스터펑크’를 새롭게 해석하는 독창성에 주목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여덟 명씩 참여해 신작을 선보이는 『시스터펑크 유니언』은 상대국의 시선으로 작품을 읽고, 플롯 단계부터 양국의 작가와 편집자가 의견을 나누며 완성한 작품집이다. 블라인드 공모와 교차 심사, 번역과 공동 편집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연결한 이 책은 연대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작 과정에서도 이를 실천하며, 한일 SF가 함께 세계의 규칙을 다시 써 내려간 문학적 연대의 결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