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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느끼다
손삽 허수경 숟가락 김소연 사과 이수명 쌍둥이칼 김경후 알약 하재연 오븐 이혜미 보자기 김민정 탁주 권선희 은수저 박경희 칫솔 임유리 겨울 양말 권민경 의자 손미 장롱 이용임 2부 보다 등잔 신현림 상자 정끝별 샤넬 이근화 안경 김지녀 엽서 천수호 여권 배수연 팔찌 함순례 유리 성미정 꽃병 박서영 전기스탠드 이규리 신호등 유현아 커튼 안미옥 클립 김수우 3부 듣다 콘돔 김이듬 베개 김행숙 침낭 안희연 지도 김선재 털실과 코바늘 조민 도장 김은경 꽃 최문자 버스 석지연 우주선 강성은 음반 주하림 크리스마스트리 정한아 우편함 백은선 4부 만지다 머플러 문정희 봇짐 김해자 바늘 유형진 가발 장수진 팔찌 조용미 연필깎이 이은규 교복 김소형 맨발 이성미 매니큐어 황혜경 플랫슈즈 임승유 하이힐 박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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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시인들이 있다. 사물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려 발돋움하는 시인들이 있다. 사물의 밑바닥을 열고, 그 안에 몸을 던지는 시인들이 있다. 느끼고, 바라보고, 듣고, 매만지려고 그 앞에서 자꾸만 서성이는 시인들이 있다. 나도 그 시인들 틈에 살짝 끼어본다. 사물에 고여 있는 말들을 꺼내 가만히 들여다보는 책, 아프고 가려운 이 계절에 《당신의 사물들》을 읽으며 시인들의 사물들에 대한 편애가 아름다워 눈을 자꾸만 비빈다.
안도현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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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의 기능이야 흙을 뜨는 것이겠지만 흙을 뜨는 일 자체는 많은 함의를 지닌다. 씨앗을 심을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삽은 한 생명을 흙 안에 넣어두는 도구다. 새를 묻는 것은 생명을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다. 삽은 그 두 역할을 하는 잠재태이다. 인간이 쓰는 도구들은 모두 인간의 몸의 연장이다. 삽은 그런 의미에서 손의 연장이다. 인간의 죽음과 탄생을 돕는 일을 손 대신 삽이 한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더 이상 삽날을 갈지 않았다. 뭉툭하게 흙을 뜨는 것을 그냥 두었다. 죽음과 탄생 앞에 시퍼런 날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느끼다, 허수경, 〈손삽〉」중에서
쌀을 사듯이 정기적으로 사과를 산다. 열흘에 한 번 쌀 4킬로그램을 사듯이, 사과를 2분의 1 상자 혹은 한 판을 산다. 배를 사러 갔다가, 자몽을 사러 갔다가, 키위를 사러 갔다가, “이 사과는 어디 사과예요? 얼마예요?” 하고 묻고 만다. 다른 과일들은 냉장고 속에 있음을 위주로 생각하는데, 사과는 없음으로 인지된다. ‘참, 사과가 떨어졌지…….’ 이런 식이다. ---「1부 느끼다, 이수명, 〈사과〉, 20」중에서 오븐은 수많은 세계를 한 몸에 눌러 담은 이계(異界)의 건축물이다. 오븐은 대체 불가능하며, 완연하고, 농염하다. 뜨겁고 우묵한 오븐의 배 속에 깊숙이 손을 넣고 다른 질감과 온도를 꺼낼 때, 얼굴에 훅 끼쳐오는 그 열기, 그 밀도 높은 공기의 촉감. 제 속에 담겼던 것들의 정수를 머금은 그 뜨거운 숨을 사랑한다. ---「1부 느끼다, 이혜미, 〈오븐〉」중에서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갖고 싶은 걸 말하라 할 때마다 으뜸으로 삼았던 게 명주 보자기다. 언제인가 내가 사랑하는 이가 생긴다면 무딘 재주를 갈아서라도 만들어주고픈 게 또한 명주 보자기다. 보자기를 펼쳐 내가 담으려는 게 마음이란 걸 누군가 보낸 보자기를 열었을 때 내 마음이 먼저 알아채는 걸 아는 까닭이다. ---「1부 느끼다, 김민정, 〈보자기〉」중에서 상자를 보면 나는 늘 열고 싶고 닫고 싶다. 상자 속 상자가 비로소 상자를 빠져나올 때, 상자가 그 무엇을 내뱉고 그 무엇을 담을 때, 한 상자는 또 다른 상자를 위해 열리고 또 닫힌다. 세계는 상자에서 상자로 이사하고 이주할 뿐이다. 잠시 상자 안에서 쉬고 울고 자게 될 것이다. ---「2부 보다, 정끝별, 〈상자〉」중에서 나는 요즘도 자주 침대에 누워 커튼을 본다. 커튼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본다. 촛불을 보면서 할 법한 일들을 커튼을 보면서 한다. 넓게 쳐진 커튼은 멈춰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무언가와 만난다. 그 내면의 움직임들이 나로 하여금 창과 커튼 사이의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커튼 너머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머뭇거리면서, 작은 보폭으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게 한다. ---「2부 보다, 안미옥, 〈커튼〉」중에서 그 후로도 숱하게 길을 잃었고 막다른 골목과 마주했지만 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그게 진짜 여행이었다. ---「3부 보다, 김선재, 〈지도〉」중에서 나는 이따금 2년 전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아이를 떠올린다. 유난히 반짝이던 눈망울에 이끌려 어디 가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서울대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러곤 “누나, 위암에 걸리고 나서 위가 나빠지기만 해”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슬픔보다 기묘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때 나는 지인의 병문안을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의미의 안녕을 묻기 위해 한곳에서 만났다. 아이와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나눈 안녕이 나에겐 얼마나 아프게 품어졌는지. ---「3부 보다, 석지연, 〈버스〉」중에서 누군가에게는 흔하고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사물이 있다. 나에게는 매니큐어가 그렇다. ---「4부 만지다, 황혜경, 〈매니큐어〉」중에서 플랫슈즈는 플랫, 플랫, 왔다. 바닥에 붙어서. 하지만 아주 붙지는 않고 매번 경쾌하게 바닥과 이별하면서. 이런 식으로 오는 건 플랫슈즈뿐이다. 나는 그가 보이게 오든 안 보이게 오든 알아맞힐 수가 있다. 어두운 골목 같은 목구멍을 통과해 오거나, 목구멍 같은 골목을 걸어서 오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오니까. ---「4부 만지다, 임승유, 〈플랫슈즈〉」중에서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Y는 알 수 없는 세계로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은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슬픔’이라는 조그만 추를 발목에 하나씩 달고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느낌. 그건 마치 봄이 떨어지는 꽃들의 무게를 무릎으로 감당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닮았을까? 우리는 모른다. 사랑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4부 만지다, 박연준, 〈하이힐〉, 245」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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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가려운 이 계절에 《당신의 사물들》을 읽으며
시인들의 사물들에 대한 편애가 아름다워 눈을 자꾸만 비빈다. _안도현(시인) ‘느끼다’, ‘보다’, ‘듣다’, ‘만지다’, 네 가지 감각으로 ‘사물’을 말하다 여자 시인 49명, 사물과 마주했던 각별했던 순간들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여자 시인 49명이 마음이 닿은 사물에 대해 쓴 산문집 《당신의 사물들》이 출간되었다. 남자 시인 51명과 여자 시인 이원이 참여했던 《시인의 사물들》이 ‘사물’을 통해 시인의 삶, 시선, 세계, 축적, 욕망을 엿보았다면 《당신의 사물들》에서 49명의 여자 시인들은 각자가 편애하는 ‘사물’의 안과 밖을 서성이며 그 안에 고여 있는 말을 꺼내어 사물과 마주했던 사소하지만 각별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의 사물들》에 있는 49개의 사물은 ‘느끼다’, ‘보다’, ‘듣다’, ‘만지다’의 네 가지 감각으로 나뉜다. ‘1부 느끼다’에서 허수경 시인은 〈손삽〉을 들며 흙과 인간, 죽음과 탄생에 대해 말하고, 권민경 시인은 〈겨울 양말〉을 입으며 어린 날의 겨울을 떠올린다. ‘2부 보다’에서 신현림 시인은 〈등잔〉에 불을 밝히며 힘들었던 추억을 아름답게 바꾸어놓고, 김수우 시인은 〈클립〉을 집으며 흐트러진 마음과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3부 듣다’에서 최문자 시인은 〈아카시아꽃〉을 떠올리며 옆 병상에 누워 있던 한 여자를, 백은선 시인은 〈우편함〉을 바라보며 말수가 적었던 한 시절의 남자를 떠올린다. ‘4부 만지다’에서 문정희 시인은 〈머플러〉를 두르며 인도에서 만났던 한 걸인 노파에게서 느꼈던 따뜻한 체온을, 박연준 시인은 〈하이힐〉을 신으며 어느 신혼부부와 같이 살며 보았던 무게를 감당하며 나아가는 사랑의 감정을 풀어놓는다. 이처럼 시인들은 살아가면서 만나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치기도 했던 저마다의 사적인 사물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사물의 틈에 숨어 있던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던, 어떻게도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의 한 시절을 붙잡아 조심스레 들어올린다. 사물의 맨 마음을 바라본다는 것 아리송한 것이 눈앞에 떠올라 자꾸 어른거리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있다. 바로, ‘사물거리다’라는 동사다. 김소연 시인이 〈숟가락〉에서 아버지를, 유현아 시인이 〈신호등〉에서 한 노인과 소년을, 주하림 시인이 〈음반〉에서 언니를 떠올렸던 것은 모두 그것들이 눈앞에서 사물거렸기 때문이다. 49개의 사물 중 비일상적이거나 특이한 사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이다. 황혜경 시인이 〈매니큐어〉에서 말했듯이, “누군가에게는 흔하고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사물”이 있다. ‘너’에게 있어서 흔하고 사소한 사물도 ‘나’에게 있어서는 ‘특별’할 수 있다는 걸 시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사물로서 증명한다. 김경후 시인은 〈쌍둥이칼〉에서 이렇게 말한다. “편견과 아집으로 흐려진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사물은 절대 사물 그대로가 아니다. 내게 그 사물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어쩌면 《당신의 사물들》에 있는 네 가지 감각은 사물을 대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물을 만나야겠다, 이해해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사람 앞에 감각이란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다행히도 《당신의 사물들》의 실린 49편 중 흐려진 눈과 마음 같은 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49명의 시인들은 사물의 시인이라 불리는 ‘프랑시스 퐁주’처럼 직접 사물이 되어 사물과 세상과 자신을 바라본다. 시를 쓰는 행위가 늘 그렇듯이 조금의 헛디딤도 없이 곧고 자유롭게 사물에게로 나아간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사물거리는 사물의 맨 마음을 보기 위해서이며 사물에 비친 자신의 맨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이다. 《당신의 사물들》에 실린 49편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사물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물 옆에 자신을 가만히 놓아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가능성 앞에서, 그리고 수많은 ‘나’의 가능성 앞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사물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게 될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