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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해 뜨는 지평선 고향(그의 얼굴)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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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이 이런 정경을 도해(圖解)한다.
유구한 세월에서 눈뜨니 보자, 나는 교외 정건(淨乾)한 한 방에 누워 자급자족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추억처럼 착석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 불원간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의아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으로 연구한다. 누가 저 새악시를 사랑하던가! 연구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묾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스스 오월 철에 맞는 치마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에 내가 놀라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갈망하기가 좀 어렵다. 반사적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님재는 자객입니까요?" 서투른 서도(潟) 사투리다. 얼굴이 더 깨끗해지면서 가느다랗게 잠시 웃더니, 그것은 또 언제 갖다 놓았던 것인지 내 머리맡에서 나쓰미캉(여름밀감)을 집어다가 그 칼로 싸각싸각 깎는다. "요곳 봐라!" --- “동해” 중에서 속아서 금일금일 어머니가 될 몸으로 그것은 고향 무도장(舞蹈場)에서 얻은 치명적 결과이었다. 프로란치누는 다른 많은 여자와 같이 타락의 산 증거를 감추려고 파리에 올라와서 어느 산과병원(産科病院)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여기를 나올 때는 어떤 단단한 결심을 품고 있었다. 어린애를 뒤업고 제 동네에 돌아가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어데 유모 노릇이나 하였으면 그럭저럭 지내갈 수입이야 생기련마는 그런 자리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제 아이를 기르랴 기를 수 없어 잠깐 육아원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조략(粗略)한 위임장에 서명을 마치자 빈손으로 길거리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다. 눈물을 켜켜이 눌어 붙은 얼굴로, 그는 자기가 곱삶고 또 곱삶은 물음에 대한 서기의 최후의 대답을 또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이 애를 찾을 만한 형편이 될 때는 꼭 도루 내 주십시오." "그야 물론이지." "그 동안에 이 애의 안부를 물어 볼 수 없을까요?" "석 달에 한 번씩 ‘아에니유 빅토리아’에 가게. 가서 이것을 보이면 묻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지 물을 수 있으니." --- “나들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