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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산남 부부 누이동생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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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같이 따스하고 털자리같이 푸근한 기분을 주던 이른 겨울 어떤 날 오후이었다. 일주일 전에 우리 집에서 떠나간 어멈의 엽서를 받았다.
이날 오후에 사에서 나오니 문간에 배달부가 금방 뿌리고 간 듯한 편지 석장이 놓였는데 두 장은 봉서이었고 한 장은 엽서이었다. 봉서 중 한 장은 동경 있는 어떤 친구의 글씨였고 한 장은 내 손을 거쳐서 어떤 친구에게 전하라는 가서(家書)이었다. 나머지 엽서 한 장은 내 눈에 대단히 서투른 글씨였다. 수인란에 ‘경성 화동 백 번지 박춘식씨(京城花洞百番地朴春植氏)’이라고 내 이름과 주소 쓴 것을 보아서는 내게 온 것이 분명한데 끝이 무딘 모필에 잘 갈지도 않은 수묵을 찍어서 겨우 성자(成字)한 글씨는 보도록새 서툴렀다. --- “갈등” 중에서 아직도 사나이는 허리에 바를 동인 채 돌팔매질을 하고 있을까? 고향에 계신 내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또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난 뒤면 문뜩 이렇게 생각되는 것이 일종의 나의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에 지질려 뻘겋게 흐르던 피가 내 눈에 가시같이 들여박힐 때면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기억을 헤쳐버리려고 몇번이나 애를 썼지만 웬일인지 이태를 맞는 오늘까지 점점 더 그 핏빛이 선명해질 뿐입니다. 검실검실한 큰 눈에 올챙이같이 머리만 퍼진 코를 가진 사나이, 그래서 양미간이 턱없이 죽었음인지 우직해도 보이고 어찌 보면 소름이 끼치게 무섭던 그 사나이, 그는 우금까지 바를 동인 채 돌팔매질을 하는 것 같고 그러한 양을 나는 언제나 다시 만날 듯하여 소름이 끼치곤 하였습니다. 근년에 내 신경이 좀 과민해진 데서 이러한지도 몰라도. 차안에서 이 사나이의 과거를 순서없이 주워들은 것을 종합해보면 우리 시골인 읍인 S골에 가장 세력가요 부호로 굴지하는 김 진사나 남의 유부녀를 보아 난 아들이 즉 그 사나이라는 것, 무엇 때문인지 모르나 그들 모자를 산막으로 쫒은 후에 한번도 돌아보지 않은 것, 어느때 이 사나이가 김진사 앞에서 칼부림까지 했다는 것이다. --- “산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