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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한
여름날 만평 목가 어떤날 밤 언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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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宣祖) 임진의 겪은 전고미문의 국난 때문에, 삼천리 강토가 한 덩어리 재로 화하고 국력이 극도로 쇠약하고, 파루폐옥만 덩더렇게 늘어 있는 참담한 형태를 이룬 지 수년.
선조대왕 승하하고, 그 아드님 광해군이 즉위한 뒤에는 이 용감한 청년왕은 무엇보다도 국도 부흥에 전력을 다하였다. 피폐된 국민의 힘으로는 좀 당하기 어렵기는 어려웠지만, 이 임금 치정 십사 년간에 이전 임진 때에 한 더미 재로 화하였던 국도는 다시 고루거각이 즐비하게 되고 아름다운 서울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 임금은 국도 부흥에 전력을 쓰느라고, 부왕시대부터 재상들 새에 차차 왕성하여 가는 당쟁(黨爭)을 종언하고 억압할 겨를이 없었다. 그 결과로서 재위 겨우 십사 년 뒤에, 재상들의 당쟁의 틈에 끼어서 용상에서 쫓겨나 배소(配所)의 달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빠졌다. 그 왕의 뒤를 이어서 등극한 임금-인조대왕-은 당쟁의 여파에 밀려서 등극한 분이니만치, 당쟁을 철저히 탄압을 할 수가 없었다. --- “장사의 한” 중에서 "이번에는 네 처까지 다 데리고 올라가게 하고 내려왔지?" 내가 집으로 내려온 날 밤에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히더니 이렇게 물으신다. 봄에 내려왔을 때 아버지가 이제는 돈을 아니 주시겠다고 하시므로, 이번까지 돈을 주시면 내 아내까지 다 서울로 데려다 살림을 하겠다고 굳이 졸라서 그때에도 또 돈 3백 원을 가지고 올라갔던 것이므로, 이번 내려오면 으레 이러한 말씀은 들으리라, 예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되지는 못하였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네. 장차로는 그리 되겠습지요." 할 밖에. 하니까 아버지는, "무엇이! 장차라니." --- “목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