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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피고 표제 한담 희화 조선근대소설고 제월 씨에게 대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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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창피창피 한대야 나 같은 창피를 당해 본 사람이 있겠나.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도 부끄러울세. 그렇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창피는 다시 한번 당해 보고 싶기도 하거든. 이야기할께. 들어 보게. 오년 전, 육 년 전, 칠 년 전인가. 어느 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혈기 하늘을 찌를 듯하던 젊은 시절일세 그려. 지금은 벌써 내 나이 삼사십. 얼굴에는 트믄트믄 주름자리까지 잡히었지만 이 주름자리도 없던 젊은 시절. 절기는 봄날. 우이동 창경원에 벚꽃 만개하고 사내계집 할 것 없이 한창 바람나기 좋은 절기일세 그려. 얌전하던 도련님 색시들도 바람나기 쉬운 봄철에 그때 장안 오입장이로 자임하고 있던 이 대감이 가만 있겠나. 비교적 수입도 좋것다. 허위대 풍신 언변 남한테 빠지지 않고 시조 한 마디 가야금 한 곡조도 뽑아 낼 줄 알고 경우에 의해서는 호령마디도 제법 할 줄 알고 장안 오입장이로는 그다지 축가는 데가 없던 대감일세 그려. 그 위에 여관 생활하는 자유로운 몸이것다. 친구놈들도 모두 제법 한몫씩은 보는 놈들이것다. --- “증거” 중에서 낮비 소리보다는 밤비 소리가 더욱 가슴에 마친다. - 정력적으로 쭈룩쭈룩 그렇게 세차게나 퍼부었으면 오히려 나을 것이, 오기도 싫은 것을 보슬보슬 끊임도 없이 속삭이는 가랑비 소리 - 그것은 마치 사람의 눈을 피하여 조심조심 걸어오는 사신(死神)의 발자국 소리나처럼 정암의 귀에는 들린다. 날마다 살이 깎여만 내릴 줄 아는 팔뚝을 들여다는 보면서도 그래도 마뜩해 죽기야 하리? 하던 그 굳센 신념만은 조금도 꺾이지 않던 것이, 며칠째 의사의 진찰 태도에 그만 정암은 그렇게도 굳세던 마음이 일조에 꺾이고 죽음의 공포 속에 자꾸만 오력이 재려든다. 더욱이 오늘 아침의 진찰에 와서는 청진기를 가슴에 대기가 바쁘게 머리를 흔들며 실색을 하던 그 의사의 태도는 그것이 벌써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모르지 않는 것이다. 별안간 가슴이 덜컥 하고 내려앉으며 정신이 아찔하여진다. --- “희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