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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있는 삽화
누이의 집 용자소전 창백한 얼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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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 좌우로는 변두리가 까마아득하게 퍼져나간 넓은 들이, 이편짝 한 귀퉁이가 나지막한 두 자리의 야산(野山) 틈사구니로 해서 동네를 바라보고 홀쪽하니 졸아 들어온다. 들어오다가 뾰족한 끝이 일변 빗밋한 구릉(丘陵)을 타고 내려앉은 동네. ‘쇠멀’이라고 백 호 남짓한 농막들이 옴닥옴닥 박힌 촌 동네와 맞닿기 전에 두어 마장쯤서 논 가운데로 정자 나무가 오똑 한 그루.
먼빛으로는 조그마하니, 마치 들 복판에다가 박쥐우산을 펴서 거꾸로 꽂아놓은 것처럼 동글 다북한 게 그림 같아 아담해보이기도 하지만, 정작은 두 아름이 넘은 늙은 팽나무다. 멍석을 서너 잎은 폄직하게 두릿 평평한 봉분이 사람의 정강이 하나 폭은 논바닥에서 솟았고, 저편 가로다가 울퉁울퉁 닳아빠진 옷뿌렁구를 드러내놓고서, 정자나무는 비스듬히 박혀 있다. 봉분에서 이리저리 뻗어나간 논틀길을 서너 갈래, 그중 동네로 난 놈이 유독 넓기도 하고 꽤 길이 난 것은, 동네와 이 정자나무 밑과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표적을 드러냄이다. 봉분 둘레로는 나무에서 떨어져내린 앞이야 부러져내린 삭정개비야, 봉분에서 쓸려 내려간 검부작이야 흙부스러기야 또 어른 아이 없이 무심코 빗디딘 발자죽이야, 그런데다가 육장 그늘까지 덮이고 해서, 도통치면 한 마지기는 실히 되게시리 논의 벼농사를 잡쳐놓았다. 나무가 생김새가 운치도 없고, 또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을 요긴해할 활량도 없고 한데, 더구나 그렇듯 농사를 잡쳐놓기까지 하니, 벼 한 포기라도 행여 치일세라 새뤄하는 촌사람들에게야(가령 논 그 농사가 제 가끔 제 것이 아니라도) 이 정자나무가 그다지 귀인성 있는 영감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한술 더 떠, 영감이 성미가 유난하게시리 도섭스러서, 동네 사람들의 폐로와함이 또한 이만저만찮다. --- “정자나무있는 삽화” 중에서 S 형, 형의 글을 받고 역시 사람이란 물과 같은가보다 했소이다. 그릇에 담아서 형태가 변하는 점에서! 신문이나 잡지 편집자에게는 양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느니라고 언젠가 형의 논문에 오자가 여남은 개나 났던 것을 예로 들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분개를 하고, 현대 조선의 인쇄술이나 현재 우리네 언론기관의 기구로는 그것이 거의 절대일 정도로 불가능하다고 변명을 하니까, 그럴진대 맹세코 그런 기관에 직을 갖지 않으니만 같지 못하다, 그런 것을 알고서도 몇 푼의 월급을 위해서 즐기어 파렴치한 직업을 가짐은 경멸하기에 족하지 않느냐, 이렇게 분개하던 형이 그때보다 별로 나아지지도 못한 잡지사에 직을 구한 것은 아우에게는 한 경이였거니와, 그보다도 아우를 놀라킨 것은 같은 학자들 중에서도 융통성이 없기론 유명타던 형이 잡지 편집에 관계한 지 불과 석 달에 이런 안을 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친구가 맡긴 돈이라고 어린 것이 폐렴으로 그야말로 명재경각의 위기에 있는 것을 보고도 그 돈을 헐어 쓰지 못하고 드디어 어린 것을 희생시킨 형으로서 어찌 잡지 편집에 직을 구할 용기가 났을까. 형은 물론 환멸을 느끼고 그만두리라 이렇게만 보고 있던 아우는 거번 그믐께 보낸 편지를 받고는 더욱 놀랐던 것입니다. 사실 형이 준 제목은 벌써 삼 년 가까이 붓을 들지 않은 아우에게 비상한 흥미를 주었더이다. 동기야 무엇이었든 한번 붓을 놓고 삼 년간 여러 편집자에게 졸려가면서도 파계를 하지 않은 아우에게 다시 붓을 잡을 흥미를 일으켜주었다는 점만으로도 편집자로서의 형의 수완을 만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누이의 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