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화
불행한 계승 휴업과 사정 유린 화형 |
|
누님은 십 팔 세의 꽃 같은 처녀로 ○○학교 여자부 사년급에 우등 성적으로 진급되고 나도 그 학교 이년급에 진급되던 봄의 일이다.
나의 손을 붉게 하고 내 얼골을 푸르게 하던 치위는 없어진 지 오래이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 끝은 부드럽다. 잔디밭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개나리와 진달래는 벌써 산야를 붉고 누르게 수(繡) 놓았다. 어느덧 버드나무 얽힌 곳에 꾀꼬리는 벗을 찾고 아지랑이 희미한 하늘에 종달새는 높이 떴다. 우리 집 뜰 앞에 심어둔 두어 나무 월계화도 춘군(春君)의 고운 빛을 나도 받았노라 하는 듯이 난만(爛漫)히 피었었다. 하롯날 떠오르는 선명한 햇빛이 어렴풋이 조으는 듯한 아츰 안개에 위황(?煌)한 금색을 흩을 적에 누님은 가늘게 숨쉬는 춘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어리인 듯이 월계화를 바라보고 섰다. 쏘아오는 햇발이 그의 눈을 비추니 고개를 갸웃하며 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눈을 스르르 감더니 아즉도 어슴푸레하게 조으는 월계화 그늘에 몸을 숨기매 이슬 젖은 꽃송이가 누님의 뺨을 스친다. 손으로 가벼이 화판(花瓣)을 만지며 고개를 숙여 꽃을 들여다본다. --- “희생화” 중에서 삼 년전 이 보산과 SS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앉아있었다. 보산에게 다른 갈 길 이쪽을 가르쳐주었으며 SS에게 다른 갈 길 저쪽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담 하나를 막아놓고 이편과 저편에서 인사도 없이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보산과 SS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하다가는 가까워졌다 어떻게 하다가는 멀어졌다 이러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보산의 마당을 둘러싼 담 어떤 점에서부터 수직선을 끌어놓으면 그 선 위에 SS의 방의 들창이 있고 그 들창은 그 담의 매앤 꼭대기보다도 오히려 한 자와 가웃을 더 높이 나있으니까 SS가 들창에서 내어다보면 보산의 마당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보산은 적지아니 화를 내며 보아지내왔던 것이다. SS는 때때로 저의 들창에 매어달려서는 보산의 마당의 임의의 한 점에 춤을 배앝는 버릇을 한두 번 아니내애는 것을 보산은 SS가 들키는 것을 본 적도 있고 못본 적도 있지만 본 적만 쳐서 헤어도 꽤 많다. 어째서 남의 집 기지에다 대이고 함부로 춤을 배앝느냐 대체 생각이 어떻게 들어가야 남의 집 마당에다 대이고 춤을 배앝고 싶은 생각이 먹힐까를 보산은 알아내기가 퍽 어려워서 어떤 때에는 그럼 내가 어디 한 번 저 방 저 들창에다가 매어달려볼까 그러면 끝끝내는 나도 이 마당에다 대이고 춤을 배앝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고야 말 것인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하고는 하였지만 보산은 아직 한 번도 실제로 그 들창에가 매어달려본 적은 없다고는 하여도 보산의 SS의 그런 추잡스러운 행동에 대한 악감이나 분노는 조금도 덜어지지는 않은 채로 이전이나 마찬가지다. --- “휴업과 사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