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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기
봉별기 환시기 까막잡기 그리운 흘긴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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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유산호(○遺珊瑚)요 다섯자(字) 동안에 나는 두자(字) 이상(以上)의 오자(誤字)를 범(犯)했는가 싶다. 이것은 나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겠으나 인지(人智)가 발달해가는 면목(面目)이 실로 약여(躍如)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珊瑚) 채찍을랑 꽉 쥐고 죽으리라. 네 폐포파립(廢袍破笠) 위에 퇴색(褪色)한 망해(亡骸) 위에 봉황(鳳凰)이 와 앉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終生記)' 가 천하(天下)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해 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一念) 아래 이만큼 인색(吝嗇)한 내 맵시의 절약법(節約法)을 피력(披瀝)하여 보인다. 일발포성(一發砲聲)에 부득이 영웅(英雄)이 되고 만 희대(稀代)의 군인(軍人) 모(某)는 아흔에 귀를 단 황송한 일생(一生)을 끝막던 날 이렇다는 유언(遺言) 한 마디를 지껄이지 않고 그 임종(臨終)의 장면(場面)을 곧잘(무사[無事]히 후ㅡ 한숨이 나올 만큼) 넘겼다. --- “종생기” 중에서 그이와 살림을 하기는, 내가 열 아홉 살 먹던 봄이었습니다. 시방은 이래로 삼십도 못 된 년이 이런 소리를 한다고 웃지 말아요. 기생이란 스무 살이 환갑이라니, 삼십이면 이를테면 백세 상수한 할미쟁이가 아니야요? 그 때는 괜찮았답니다. 이 푸르족족한 입술도 발그스름하였고 토실한 뺨볼이라든지, 시방은 촉루(??)란 별명조차 듣지마는 오동통한 몸피라든지, 살성도 희고, 옷을 입으면 맵시도 나고, 걸음걸이도 멋이 있었답니다. 소리도 그만저만히 하고 춤도 남의 흉내는 내었답니다. 화류계에서는 그래도 누구 하고 이름이 있었는지라, 호강도 우연만히 해 보고 귀염도 남불잖이 받았습네다. 망할 것, 우스워 죽겠네.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 하고 제 칭찬만 하고 앉았구먼. 어쨌든 나도 한시절이 있은 것은 사실입니다. 해구멍이 막히지도 않아 요릿집에서 인력거가 오고, 가고만 보면 새로 두 점 석 점 전에는 집에 돌아온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집에 와서 곧 자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 대개 집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또는 손님과 같이 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또 고달픈 몸을 밤새도록 고달프게 굴다가, 해뜬 뒤에야, 인제 내 세상인가 보다 하고, 간신히 눈을 붙이면 사정 모르는 손들이 낮부터 달겨들어서 고단한 몸을 끌고 꽃구경을 간다, 들놀이를 간다, 절에를 나간다, 합니다그려. 그러니 몸이 피로 않을 수 있습니까? 놀기란 참고된 일입네다. 어느 때는 사지가 늘어지고, 노는 것이 딱 싫고 귀찮아서, ‘이년의 노릇을 언제나 마나!’ --- “그리운 흘긴 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