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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의 거리
벌번반년 연애삽화 불로초 문예가협회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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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부 견평방(中部 堅平坊)
지금(1946년 현재)은 거기 서 있는 건물(建物)도 헐리어 없어져서 빈 터만 남았지만, 연전까지는 빈 벽돌집이나마 서 있었고, 그전 잠깐은 화재 뒤의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이 임시 영업소로 썼고, 그전에는 수십 년간 종로경찰서의 청사(廳舍)로 사용되었고, 또 그전에는‘한성 전기회사’가 있던 곳. 그 곳은 이태조 한양 정도 후에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를 두었던 곳이다. 순군만호부는 태종 이년에 순위부(巡衛府)라 이름을 고치었다가, 삼년에 다시 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라 칭하였다가, 십사년에 의금부(義禁府)라 다시 고친 것으로서, 속칭 왕옥(王獄) 왕부(王府) 금오청(金吾廳) 금부(禁府) 등등으로 불리우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태고 적부터 변함없이 동쪽으로 떴다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이 날도 여전히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집집의 지붕 위로 솟은 굴뚝에서는 마지막 연기까지도 사라지고 고요한 밤이 이르려 할 때였다. 고요한 밤은 바야흐로 이르려 한다. 그러나 의금부와 그 근처 일대의 공기뿐은, 어디인지 지적키는 힘드나 그다지 고요하지 못하였다. 무슨 중대한 일이 장차 벌어지려는 모양으로, 도사 나장들의 출입이 빈번하고 어디인지 불안한 공기가 돌고 있었다. --- “벌번반년” 중에서 두 달 전에 우리 학원으로 찾아온 여교원 마미령(馬美鈴)은 이상한 여자였다. -중학을 마치고 전문까지 다니던 여자라면 취직을 하여도 그리 눈 낮은 데는 하지 않을 것인데 서울서 일부러 칠백 리나 되는 농촌의 개량서당인 우리 학원으로 그것도 자진하여 보수도 없이 왔다는데 이상히 아니 볼 수 없는 것이요. 스물여섯이면 여자로서의 결혼 연령은 지났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시집을 아니 갔다는 것이 또 한 이유이다. 이따금 정신없이 우두커니 서서 무엇을 심심드리 생각하다가는 긴 한숨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 더욱 그 여자를 이상하게 보게 만드는 점이었다. 그리고 생각하면 미령이가 우리 학원으로 오게 된 동기부터 이상한데 있었다. C일보 ‘독자 이용란’ 이라는 것을 통하여 하루는 농촌에 있는 사립 소학교로서 경비 부족으로 교원을 못 쓰는 학교가 많은 듯하오니 어디든지 기별만 하시면 원근을 물론하고 찾아가서 힘 가는 데까지 조력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하는 기사를 보고 때마침 교원 문제로 쩔쩔매던 우리 학원에서는 아직 학교로서의 양식조차 이루지 못한 존재였으므로 웬걸 하면서도 만일을 위하여 엽서 한 장을 띄웠더니 두말없이 승낙을 하고 찾아온 여자가 미령이다. --- “연애삽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