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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
동화 들메 범선에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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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까지가 ‘동화’고, 그래서 업순이는 그리로 떠났다.
1. 그 안날 낮에 물기가 듣는 듯 그늘 짙은 뒷마루에서 업순이는 바느질이 자지러졌다. (음력으로 칠월) 한여름의 한낮은 늘어지게 길다. 조용하고, 이웃들도 졸음이 오게 짝 소리 없다. 뒤 섶울타리를 소담스럽게 덮은 호박덩굴 위로 쨍쨍한 불볕이 내리쬔다. 오래 가물기도 했지만, 더위에 시달려 호박잎들이 너울을 쓴다. 손 가까운 데 두고 풋고추도 따먹을 겸 화초삼아 여남은 포기나 심은 고춧대들도 가지가 배애배 꼬였다. 그래도 갓난아기 고추자지 같은 고추가 담숭담숭 열리기는 했다. --- “동화” 중에서 어쩌면 배가 인천에서 한 이틀 묵게 될지도 모른다는 정장의 말에 석은 가슴이 울렁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꼭 사형이 되리라고 아주 깨끗이 단념하고 있던 죄수가 뜻밖에 석방이 된다는 말을 들은 때와도 같은 충격이었다. 만일에 꼭 이삼 일만 인천에서 지체가 될 마련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진엔가 하는 데를 가볼 수 있을 것이다. 범선이라도 인천서 해변까지면 하룻길밖에는 안 될 성싶었고, 배에서 당진까지가 이십리 가량 되어 보이고 오장골이란 동네는 지도에도 없는지라 정확한 거리는 알 수가 없었지만, 면천면이라고 보니 맨 변두리가 된대도 기껏해야 삼십리보다 더 멀성싶지가 않다. 그렇다면 올 적 갈 적 친대야 오십리니 배가 조금만 일찌감치 대어준다면, 밤길을 걸을 작정만 하면, 그날 안으로 처자가 있다는 오장골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게고, 이튿날 새벽에만 나온다면 늦어도 그 이튿날 밀물 때까지는 돌아가는 배에까지 댈 수가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꼭 몰살을 당한 줄만 알고 있던 가족이 전부 살아 있다는 이 희한한 사실 앞에 석은 꼭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반동 분자의 낙인이 찍힌 석의 가족이고 보니, 남겨둘 리도 만무리라 싶었지만, 더욱이 9?28 탈환 후에는 군에 적을 두게 된 터라 목숨을 붙여두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 “범선에의 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