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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주춧돌 역사와 사실과 판단과 사료에 대한 작자의 입장을 논함 캉가루의 조상이 자기의 창조한 세계 -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여 작품과 제재의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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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동(五鶴洞)은 이씨촌(李氏村)이었었다.
한 삼백 년 전에 이씨의 한 집안이 무룡(舞龍)재를 넘어서 이곳으로 와서 살림을 시작한 것이 이 오학동의 시작이었다. 조상의 뼈를 좋은 곳에 묻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삼백 년 뒤 그때의 그 조상부터 십 오륙대가 내려온 지금에는 거기는 커다란 동리를 이루고 호구 일백 사십여 호 사람의 수효 육칠백 명 항렬로 캐어서 어린아이의 고조부로 비롯하여 늙은 고손까지 촌수로는 이십 육칠 촌까지의 순전한 이씨와 그의 안해들로써 커다란 말을 이루었다. 오학동의 동쪽에는 무룡(舞龍)재라는 매우 가파로운 묏견이 있었다. 서편으로는 말령[馬嶺]이라는 역시 가파로운 묏견이 있었다. 그 무룡재와 말령은 오학동에서 오 리쯤 남쪽에 가서 겨우 작은 개천이 하나 흐를 이만치 벌어지고 오 리쯤 북으로 가서는 서로 합하여서 만약 하늘에서 그곳을 내려다 볼 것 같으면 그것은 마치 묏마루에 있는 한 구렁텅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오학동과 그 근방 일대 -무룡재와 말령에 둘러싸인- 를 가리켜 ○○골이라 하였다. 여자의 생식기를 따서 붙인 그 골짜기의 이름은 모양으로 보아서 그럴듯하였다. ○○골에는 마을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물론 오학동이요 또 하나는 정방(正坊)이라는 동리였었다. 오학동은 ○○골의 중앙에 있었고 정방은 무룡재와 말령이 북쪽에서 합한 그 산밑에 있었다. 두 마을의 거리는 한 오 리쯤 되었었다. --- “잡초” 중에서 실제를 이상화하기는 쉬워도 이상을 실제화하기는 그렇게도 어려운 듯하다. 문보가 약혼을 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할 적에도 이상과는 너무 멀었던 사실이다. “내가 약혼을 하다니!” 앞길의 판재에 현재를 더듬어 미래를 내다볼 땐 천생에 죄를 지은 듯이 마음이 두렵다. 멘델의 유전학적 법칙은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문보가(家)의 유전적 내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죔손이, 절름발이, 곱사등이, 앉은뱅이, 애꾸눈이 - 대대로 이런 불구자를 계승하여 내려오는 가계(家系)에서 자기 따라 이, 목, 구, 비가 분명하고 사지 백체가 제대로 가진 인간으로 대를 가시어 놓기 바랄 수 있을 것일까? --- “캉가루의 조상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