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의 운명
안양 복거기 원균의 후예 전기 |
|
오늘은 자리가 바뀌었다.
할머니(총기 좋은 할머니)가, 한 동네에 있는 둘쨋집에 온 것이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윤석(允錫), 승석(承錫), 중석(重錫)의 삼형제 가운데, 기미년(己未年) 삼일운동 적에 죽은 그 둘째아들 승석의 집이었다. 승석의 집이라고 하지만, 물론 대주(大主) 승석은 이미 죽어 없고, 유족으로 그의 부인 강씨(康氏)가 아들 원희(元熙)를 데리고, 따로이 한집(호구[戶口])을 이루고 사는 집이었다. 승석의 둘쨋집, 중석의 세쨋집과 더불어, 맏이 윤석, 멀리 경술년(庚戌年)합방 후 의병에 투신을 하였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 광복운동을 하다 노령(露領)으로 간 뒤로 이내 소식이 없어, 필연 죽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그 윤석의 집도 같이 이 동네에 있었다. 윤석의 부인 고씨(高氏)가, 그 몸에서는 소생이 없어, 셋째 중석에게서 난 성희(成熙)를 양자로 들여, 같은 한 동네에서 역시 따로이 한 집(호구[戶口])을 이루었던 것이었었다. --- “아시아의 운명” 중에서 "법정은 일시 휴정이고 심의에 들어감." 이 재판장의 음성 여하로써 나는 그날 판결을 대개 예측할 수 있었다. 변호를 많이 해온 경험에서다. 더욱이 R 재판장의 재판에는 벌써 다섯번째나 변호를 맡았었고, 나의 예측한 형기에서 벗어나본 예가 별로 없었다. 특히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긴 변론을 호감으로서 들어주는 것처럼 내게는 느끼어졌었고, 다른 심판관들의 태도도 대체로 오발로 인한 사건에 3년을 구형한 검찰관에 도전한 나의 변론에 많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졌었다. "최고 1년? 1년은 무릴까? 1년 반?" 오늘 공기로 보아 최고 1년 반 이상은 절대로 넘어갈 리 없다고 나는 자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1년쯤으로 떨어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무기 취급에 대해서는 유달리 엄격한 P 대위가 검찰관이면서도 3년밖에 구형을 하지 않았다는 그 자체가, 비록 전우를 죽이기는 했다지마는 불가항력인 오발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번 오발 사건 때는 불구자는 되었을 망정 죽기까지는 않았는데도 5년을 구형한 P 대위였었다. --- “원균의 후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