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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유혹에 빠졌다가
ㄷ씨 행장기 귀향도중 그 뒤로 금과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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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오늘도 회색 두루마기에 꾀죄죄한 동정, 원래는 깜장이었던 뿌우연 진회색 모자에 코는 벌름하고, 뒤축은 짚신처럼 찌그러진 구두라는 30년 전 그대로의 그 초라한 행색으로, 이 또한 30년 가까이나 살고 있는 청파 연화봉 마루턱에 다 쓰러져가는 함석집을 나오면서 기침이라기보다는 너 이놈들 오늘은 어디 한번 견디어봐라, 하고 빼무는 듯싶은 앙칼진 애햄! 소리를 치고 한길로 나서는 것이었다. 실상 이 되바라진 기침만 해도 이미 30년이나 된,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세월, 아마 40년 가까이나 된 버릇일 것이, ㄷ씨는 열다섯 되던 해부터 이 사회에 대하여 꽁한 생각을 품은 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남산골 샌님의 외아들로 태어난 ㄷ씨였고 보니 열다섯 이전이라고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언제 한번 딛고 일어서 보리라는 바람〔희망[希望]〕이란 것을 갖고 살아왔었으나 아이들 칼장난처럼 위태롭게만 보여지던 당파싸움이 급기야 을사조약을 맺게 만들고, 그래도 무슨 도리가 있겠거니 막연한 희망을 붙이고 있는 때 한일합방이란 청천에 벽력이 내린 후로부터는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되고 말았었다. 합방이 발표되자 ㄷ씨의 아버지 ㄷ생원은 머리를 풀어헤뜨리고 머리를 벽에다 꽝꽝 들이받아가며 울었었다. 머리가 터졌는지 방안에는 선혈이 흥건했었다. ㄷ씨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진정시키려 들었으나 그것은 헛된 노력이었다. --- “ㄷ씨 행장기” 중에서 총총한 귀향의 길이었다. 가친의 위보(危報)를 받고도 어찌할 수 없는 구애(拘碍)로 이틀 동안이나 경성시내에 들어와 조민(躁悶)히 충그리고 있다가 그런지 사흘 만에야 밤 열한시의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얼마 전부터 증세 심상치 않으시니 방심치 말라는 서신이 두 차례나 있었고, 그러던 끝에 드디어 위독즉래(危篤?來)하라는 전보가 달려들었었다. 그러나마 팔순의 고령이요 노환이었다. 그러니 전문에는 위독이라고 했지만 칠분(七分) 일은 당해둔 일이었다. 혹은 그동안 벌써 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연 준상제의 심정이요 일변 마음이 초조하여 꼬박 7년 만의 귀향이라도 달리 감회가 유유하다든가 기쁨이 솟는다든가 할 경황은 없었다. 그러나 온종일 길을 걸으면 승(僧)도 보고 속(俗)도 보고 한다든지 길을 나서니 색다른 세태와 인사(人事)가 자연 발부리에 걸린다. 맨앞엣 찻간으로 올랐더니 의외로 성글어서 안해와 마주 한 칸씩의 좌석을 호젓이 하나씩 차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대중이라면 누워서 잠을 자면서도 갈 수가 있겠거니 하여 매우 다행스럽다. 그러나 차가 한 정거장 두 정거장 들르는 동안 차차로 승객은 불었다. 그리하여 미구에 우리는 가외(加外)의 좌석을 내놓아야 했다. --- “귀향도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