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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소설 안 쓰는 변명 여름 풍경 작품권의 변 주택 향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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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쩌면 그래, 인제서야 올까. 남의 눈이 빠지게 기다리게 해놓고 그래, 지금이 열시우? 내 참, 그래두 열한시든 열두시든 오기나 했으니 장허시우. 난 또 접때처럼 고랑떼를 먹이는 줄 알고 이때껏 혼자서 안달바가질 했지.
뭣이라고? 저 하는 소리 좀 봐. 어디 다시 한마디 해봐요? 어쩌면 너무 그렇게 사람의 맘을 몰라주시다간 괜히 죄받아요. 아우님두, 어쩌면 장난의 말이라두 그렇게 한담! 아우님이야 나 같은 것 아니고도 친구도 있고 말벗도 있고 또 고국에 돌아가시면 정말 친누님도 계시고 하겠으니까, '그까짓 것!'하고 발 새에 때꼽만치도 날 생각하지 않겠지만서두 참 난 안 그렇다우! 내야 아버지가 계시는 것두 아니구 어머니가 계시는 것두 아니구. 이 넓은 세상과 그 많은 인총에 나란 계집과 촌수 닿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구려. 그런데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땅에 와서 고국 사람들의 얼굴까지 그리고 사는 내가 어쩌자고 아우님을 소홀히 생각하겠수? --- “취향” 중에서 K군. 잊지 아니하고 소식 전해주니 고맙소. 이것은 아무나 편지 서두(書頭)에 체면과 습관으로 인사삼아 쓰는 항투의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슴찮아서 하는 치하요. 내가 왜 이런 새삼스런 소리를 할까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 전 내가 퍽 정다와 하는 친구 한두 사람을 잃어버렸는데 거기에 생각하기조차 몹시 불괘한 여운이 아예 스러지지 아니하는 때문이오. 도덕군자나 또는 장자(長者)들이 설교하는 그러한 숭고(?)한 교우지명(交友之銘) 같은 것은 나는 모르오. 나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오. 벗의 단처(短處)를 알되 허물하지 아니하고 다직해서 일종의 애교를 보게 되어야 하고, 그 장처(長處)는 공리적(功利的)으로 이용하려 아니하고 일종의 심미적 만족감으로써 대하는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러야만 참된 우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말하면 이상이나 주장 같지만 그것보다 앞서 사실이 그러하오. 부자 사람에게 참된 친구가 별로 없는 것, 시정(市井)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흡사 남녀간의 연정과 같이 전부를 초월한 진실한 우정의 실례가 허다함이 그를 설명해 주고 있소. --- “소설 안 쓰는 변명”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