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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암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우상의 문제에 대하여 슬픈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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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동안 잠자고 짧은 동안 누웠던 것이 짧은 동안 잠자고 기인 동안 누웠던 그이다. 네 시에 누우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그리고 아홉 시에서 열 시까지 리상. 나는 리상한 우스운 사람을 아안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하여 한 쪽 보려하는 것이거니와 그에서 그의 하는 일을 떼어 던지는 것이다. 태양이 양지짝처럼 내려쪼이는 밤에 비를 퍼붓게 하여 그는 레인코우트가 없으면 그것은 어쩌나 하여 방을 나선다.
이삼모각로도북정차장 좌황포차거(離三茅閣路到北停車場 坐黃布車去) 어떤 방에서 그는 손가락 끝을 걸린다. 손가락 끝은 질풍과 같이 지도 위를 거읏는데 그는 마않은 은광을 보았건만 의지는 걷는 것을 엄격케 한다. 왜 그는 평화를 발견하였는지 그에게 묻지 않고 의례 한 K의 바이블 얼굴에 그의 눈에서 나온 한 조각만의 보자기를 조각만 덮고 가버렸다. --- “지도의 암실” 중에서 비평은 검토의 별칭에 불과한 것이다. 결코 그 대상을 모멸하거나 또는 훼손하려는 데에 본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분석학적 해부학적 고찰로써 대상의 거부와 시비를 분석 판단함에 비평의 의의가 있으며, 또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의(提議)된 즉 대상이 가진 문제를 떠나서는 비평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이해한 희설(曦說)이나 파벌적 편견만으로 횡성수설 떠버린댓자 그것은 아전인수식의 야욕은 만족할망정 정당한 비평일수 없다. 강허봉 군의 필자의 소론 ‘우상의 문제에 대한 이론과 실제’에 대한 비평은 여상(如上)한 견지에서 차라리 일소(一笑)에 부(附)할지언정 구구히 답변할 가치를 느끼지 않노니 독자 제씨께서도 잘 알려니와 강군은 ‘필자의 소론을 읽고’라는 제호 하에서 필자가 주제 삼은 우상문제 관하여서는 제2차 제3차적이라느니보다도 차라리 문제의 여운으로 돌리고서 얼토당토않은 무정부주의의 현상(?)만을 나열하기에 열광하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가소(可笑)할 작희(作戱)이냐? (차라리 무정부주의의 이론을 검토하려면 제목을 달리하는 것이 우선 강군 자신의 체모(體模)를 위하여서도 가당할 것이 아니냐.) --- “우상의 문제에 대하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