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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풍파
맥 오디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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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그동안 저의 일로 며칠을 두고 구석구석이 비밀회의가 열린 줄을 깜앟게 몰랐었다. 봉희는 인숙이와 창자를 마주 이은 것처럼 단짝으로 지낸다고 해서 절대로 알리지 않기로 하고 어른들끼리만 숙덕 공론을 하였다.
인숙의 흠을 잡어 생트집이라도 하지를 못해서 몸살이 날 지경이든 과붓댁이, 제 옷에 묻어온 이상한 편지 - 본처와는 리혼까지 한 뒤에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는 의미의 괴문서(怪文書)를 발견하고도 이제까지 참고 있었든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온 이런 망칙한 일이 세상에 있나. 남편이 류학을 간 사이에 이따위 편지를 받고 보물처럼 감춰뒀으니 내원 뒷문박 골목 속에서 어떤 학생 허구 몰래 만나서 숙은 거리는 때부터 수상하드라" 하고 제 남편의 성묘를 인력거로 들어오든 날 저녁에 어느 크다란 학생과 밀회를 하다가 들키든 생각을 하였다. --- “편지의 풍파” 중에서 "아쉰 대루 언문이나 깨쳐둘 것을" 이틀에 한 번씩 오는 늙은 우체부한테서 편지를 받아든 윤 서방은 뒤늦게야 이런 후회를 해본다. 어쩌다 보니 반절도 못 깨우친 채로 환갑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그까짓 언문이 무슨 글값에나 가느냐는 되잖은 생각에 남들이 배울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남들이 「토끼전」이니 「심청전」이니 하는 이야기책을 보고 구수하니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는 언문글도 아쉬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머리가 커져서 새삼스러이 언문을 배우기가 열쩍은 생각이 들어서 이래저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하기는 언문글이나마 달갑게 아쉬웠다면 어떻게든지 깨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들이 군대에 뽑혀가기 전까지는 국문도 모르는 까막눈으로 별로 큰 지장이 없이 육십 평생을 살아올 수 있었던 윤 서방이기도 했던 것이다. 평생 누구한테 편지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또 별로 편지를 받아본 적도 없이 살아온 육십 평생이다. 그러던 것이 해방이 되면서부터 맨 진서로만 하던 공문도 국문이 되기도 했지만 윤 서방으로 하여금 언문글이나마 아쉽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들 창수가 해병대에 입대를 한 뒤부터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는 편지를 들고 다니기도 구차스러웠지만 답장까지 써달라자니 정말 번거로운 일이었다. --- “아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