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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결혼식 석방 추억 오리온과 능금 수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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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학동(五鶴洞)은 이씨촌(李氏村)이었었다.
한 삼백 년 전에 이씨의 한 집안이 무룡(舞龍)재를 넘어서 이곳으로 와서 살림을 시작한 것이 이 오학동의 시작이었다. 조상의 뼈를 좋은 곳에 묻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삼백 년 뒤 그때의 그 조상부터 십 오륙대가 내려온 지금에는 거기는 커다란 동리를 이루고 호구 일백 사십여 호 사람의 수효 육칠백 명 항렬로 캐어서 어린아이의 고조부로 비롯하여 늙은 고손까지 촌수로는 이십 육칠 촌까지의 순전한 이씨와 그의 안해들로써 커다란 말을 이루었다. 오학동의 동쪽에는 무룡(舞龍)재라는 매우 가파로운 묏견이 있었다. 서편으로는 말령[馬嶺]이라는 역시 가파로운 묏견이 있었다. 그 무룡재와 말령은 오학동에서 오 리쯤 남쪽에 가서 겨우 작은 개천이 하나 흐를 이만치 벌어지고 오 리쯤 북으로 가서는 서로 합하여서 만약 하늘에서 그곳을 내려다 볼 것 같으면 그것은 마치 묏마루에 있는 한 구렁텅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오학동과 그 근방 일대 -무룡재와 말령에 둘러싸인- 를 가리켜 ○○골이라 하였다. 여자의 생식기를 따서 붙인 그 골짜기의 이름은 모양으로 보아서 그럴듯하였다. --- “잡초” 중에서 보려 하였을 때 누구인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이 양산을 함부로 휘두르고 남자가 속옷을 하나 안 입은 채로 웃옷은 팔에 걸은 채 매우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도 얼른 그들에게로 가보았다. 두 사람은 얼굴이 새빨개서 걸음을 속히하여 나에게로 달려왔다. 여자는 깡장깡장 짧고도 속한 걸음으로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두 사람은 무엇에 분(憤)이 본 듯이 그렇지 않으면 비상(非常)히 피곤한 모양이었다. 여자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말씀 잠깐 여쭈어 보겠어요. 여기를 어디라 하나요? 이 우리 남편이 어디든지 다 안다고 고집을 세우더니 그만 이렇게 길을 잃어버리게 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여봅쇼. 이대로 똑바로 가시면 센 그루로 가고 반대되는 길로 가시면 베르사이유로 갑니다." --- “추억“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