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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토
붉은 산 문단 십오년 이면사 장미 병들다 벙어리 삼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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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쓰려 하는 바는 여가 문필에 종사하기 비롯한 1918부터 오늘날까지의 문단의 이면사인 동시에 또한 조선 문화사의 이면의 일단이라 할 수도 있다.
제목은 여를 주인공으로 한 문단의 변천사라 하였지만 또 물론 여의 자서전이 아니다. 문단의 변천사라 하였지만 또한 순전히 문단의 변천사뿐도 아니다. 문예 애호가들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알고자 하는 바인 문인들의 왕래며 그 갈등이며 또한 1918년(1918년이라는 해는 기미사건 전의 해로서 그때부터 지금까지라 하면 즉 ‘전기’부터 ‘후기’라 하는 특수한 시기를 말함이다.)부터 오늘날까지의 일부 청년들의 왕래며 조선의 문화를 말하는 신문 잡지의 출생의 이면사 등을 아울러 말하려 하는 것이다. 시골 구석에서 소설이나 쓰고 방탕한 유흥이나 하여 그 전생을 보낸 여로서는 물론 견문도 부족하고 졸필인 혐도 없지 않으나, 여가 본 한계에서는 아직껏 1918년부터 오늘까지의 변천사를 쓴 사람이 없었으므로, 졸필임을 탓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탓하지 않고 이에 붓을 잡기로 한 것이다. --- “문단 십오년 이면사” 중에서 싸움이라는 것을 허다하게 보아 왔으나 그렇게도 짧고 어처구니 없고, 그러면서도 싸움의 진리를 여실하게 드러낸 것은 드물었다. 받고 차고 찢고 고함치고 욕하고 발악하다가 나중에는 피차에 지쳐서 쓰러져 버리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 맞고 넘어지고 항복하고 그뿐이었다. 처음도 뒤도 없이 깨끗하고 선명하여서 마치 긴 이야기의 앞뒤를 잘라 버린 필름의 몇 토막과도 같이 신선한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 신선한 인상이 마치 영화관을 나와 그 길을 지나던 현보와 남죽 두 사람의 발을 문득 머무르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람들 속에 한몫 끼여 섰을 때에는 싸움은 벌써 끝물이었다. 영화관, 음식점, 카페, 매약점 등이 어수선하게 즐비하여 있는 뒷거리 저녁때, 바로 주렴을 드리운 식당 문앞이었다. 그 식당의 쿡으로 보이는 흰 옷에 흰 주발모자를 얹은 두 사람의 싸움이었으나 한 사람은 육중한 장골이요, 한 사람은 까무 잡잡한 약질이어서, 하기는 그 체질에 벌써 승패가 달렸던지도 모른다. 대체 무엇이 싸움의 원인이며 원한의 근거였는지는 모르나 하루아침에 문득 생긴 분김이 아니요, 오래 두고두고 엉겼던 불만의 화풀이임은 두 사람의 태도로써 족히 추측할 수 있었다. 말로 겨루다 못해 마지막 수단으로 주먹다짐에 맡기게 된 것임은 부락스런 두 사람의 주먹살에 나타났었으니 약질의 살기를 띤 암팡진 공격에 한번 주춤하였던 장골은 곱절의 힘을 주먹에 다져 쥐고 그의 면상을 오돌지게 윽박았다. --- “장미 병들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