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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소녀 기차와 박 노인 문 서방 동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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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일날 오후였다. 봉희는 동무집으로 놀러간다고 교복으로 갈어 입으려는데
"별당마님께서 자근아씨를 잠간 올러오라 십니다" 하고 허리꼬부라진 안짬재기가 나려와서 일르고는 "좋은 일이 있으니 양복은 벗구 조선옷을 곱게 입구오세요" 하고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저 혼자 웃고 돌아선다. "할머니가 왜 나를 불으셔? 누가 왔어?" --- “약혼” 중에서 기차와 관련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편지를 받고 나니 까마득히 잊고 살아온 박 노인 생각이 머리에 붕 떠오른다. 해방 전 일이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해서 닿을 수 있는 K역에서도 한 십리 동쪽으로 들어간 ‘궁말’이란 산기슭 두 집 뜸에 살고 있었다. 아내 말을 빌리면 객기였지만 내 딴에는 농민 문학을 하자면 농촌에 들어가서 농민들과 생활을 같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이 ‘객기’요 ‘패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젊었었다. 레이몬드의 「농민」과 같은 4부작을 써서 일약 문단을 한번 뒤집어놓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농촌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첫째 생계가 서지 않았다. 서울이 가까우니 채소를 해보겠다던 것도 꿈이었고, 자리잡고 독서를 해보겠다던 계획도 허사였다. 만 5년간 봉놋방에서 막걸리 타령을 하다가 해방을 맞은 셈이 되고 말았었다. --- “기차와 박 노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