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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간
증거 주춧돌 기원 후 비너스 가난한 아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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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무리매를 친 뒤에, 이 무리매에 대해서도 아무 저항 없이 잠자코 맞고 있는 한 서방에게 더 칠 흥미는 없는지 젊은이들은 그곳에 쓰러져 있는 한 서방을 그대로 버려두고 모두들 우르르 나가 버렸다.
나감에 임하여 한 젊은이가 여를 향하여, "목사님도 가시지요? 저깟 늙은이는 죽으라고 버려두고." 하고 같이 가기를 권하였다. "먼저들 가오. 나는 좀 뒤에." 하며 여는 젊은이들만 먼저 돌려보냈다. --- “주춧돌” 중에서 바티칸 궁전, 부라쇼 뉴보관(館) 안, 비콘티 작(作) 세레스는 상(像)과 나일신상(神像) 사이에 놓인 십팔호의 비너스 초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 그는 순전히 인도의 여신. 즉, 영 본국에서 나서 인도에 와서 자라난 여신이다. 우리는 진짬의 비너스와 구별하기 위하여 그를 기원 후의 비너스라고 불렀다. 그 산골 사이에는 그도 한때 젊던 시절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누구 한 사람 나서서 그 소문의 진위를 대담히 증명하는 이는 없었다. 심라촌(村)에 가 있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이름을 내고 사업을 하고 다시 돌아와 보면 이 기원후의 비너스는 더 늙지도 아니하고 그들이 떠날 때의 자태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다지 푸릇푸릇은 하지 않았으나 산과 같이 변하지 않았다. 십팔 세 처녀의 하는 일, 즉 승마라든지 산보라든지 무도라든지 원족이라든지 대체로 과격한 운동을 비너스도 하기는 하였으나 조금도 피로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는 영원히 젊게 하는 법 이외에 영원히 건강하게 하는 법까지 알고 있다고 하였다. --- “기원 후 비너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