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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업과 사정
계급문학과 그 비판적 요소 19일간의 아메리카 권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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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전 이 보산과 SS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앉아있었다. 보산에게 다른 갈 길 이쪽을 가르쳐주었으며 SS에게 다른 갈 길 저쪽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담 하나를 막아놓고 이편과 저편에서 인사도 없이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보산과 SS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하다가는 가까워졌다 어떻게 하다가는 멀어졌다 이러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보산의 마당을 둘러싼 담 어떤 점에서부터 수직선을 끌어놓으면 그 선 위에 SS의 방의 들창이 있고 그 들창은 그 담의 매앤 꼭대기보다도 오히려 한 자와 가웃을 더 높이 나있으니까 SS가 들창에서 내어다보면 보산의 마당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보산은 적지아니 화를 내며 보아지내왔던 것이다. SS는 때때로 저의 들창에 매어달려서는 보산의 마당의 임의의 한 점에 춤을 배앝는 버릇을 한두 번 아니내애는 것을 보산은 SS가 들키는 것을 본 적도 있고 못본 적도 있지만 본 적만 쳐서 헤어도 꽤 많다.
--- “휴업과 사정” 중에서 사실에 있어서 위대한 나라로 온 세계에 알려진 아메리카를 겨우 19일간의 체재로서 더욱이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의 일부의 도시만을 본 필자가 운위한다는 것은 지극히 난센스한 일이다. 그러나 19일간이나 단 하루일지언정 나에게는 내 스스로의 인상과 감명이 있을 것이며 10년이나 20년을 지나도 진실한 아메리카의 진상을 파악하기 힘이 든다면 차라리 단기간의 견문이 다른 각도의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솔직한 말로서 나는 아무 계획도 기대도 없이 ‘남해호’라는 배로 떠났다. 시를 쓴다는 것이나 영화평론을 한다는 일이 이 나라에서는 생활적인 직업이 되지 못하여 나는 대한해운공사의 그늘진 책상 옆을 몇 개월간을 나갔다. 물론 고정된 수입도 없이 막연히 생활은 어떻게 되겠지 하며 친우들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월급의 날을 기다렸다. 그러한 어느 날 별로 일 같은 일도 하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배를 타고 아메리카를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는 사장의 말이 떨어졌다. 꿈같은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우스운 일이었다. --- “19일간의 아메리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