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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밤
아내의 자는 얼굴 용산난 처녀장편을 쓰던 시절 화춘의장 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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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동대문 밖에 나서서 청량리 쪽으로 내려가노라면 안감내 정류장을 못 미쳐서 바로 바른편 길 옆 기단 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조선식 건물을 볼 것이다.
이 건물은 지금 동방 신문 사장이요 청구 은행장으로 명망과 위세와 재산으로 유명한 한남윤씨의 주택이다. 씨는 본래 문안 필운동 막바지 삼층 양옥에서 살았다. 그런 것이 이태 전부터 씨 스스로도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꼭 지적할 수 없는 병에 붙잡혀서 나날이 여위어 갔다. 삼년 이른 봄에 어떤 유명한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이 병은 오래 되면 폐와 신경에 큰 관계가 되는 것이니 조용하고 공기가 좋은 데 가셔서 오래 요양하는 것이 대단 좋겠읍니다.” --- “설날밤” 중에서 이른 봄 어떤 날 황혼이었다. 목포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밤차는 호남선 송정리역(松汀里驛)에 닿았다. 고요한 시골 산천을 울리는 차 바퀴 소리가 뚝 그치자 뒤이어 내리는 손님, 오르는 손님들로 하여 쓸쓸하던 시골 역은 들썩하였다. 들썩한대야 서울 정거장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은 한 달에 여섯 번씩 열리는 장날이나 그렇지 않으면 명절 때밖에 사람의 물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골이라 매일 몇 차례씩 들레게 되는 정거장은 참말 위태하고도 복잡한 곳이었다. 이삼 분 되나 마나 해서는 들레던 물결도 고요하여졌다. 그때는 오를 사람은 다 오르고 내릴 사람은 다 내려서 출구 밖으로 나온 때였다. 인제 들리는 것은 기관차가 뿜어내는 김 소리와 역부들이 외치는 미미한 소리였다. --- “용산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