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무방
영춘류 농민의 회계보고 정자나무있는 삽화 |
|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아름드리 노송은 삑삑히 늘어박혔다. 무거운 송낙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벚, 돌배, 갈잎 들은 울긋불긋. 잔디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거린다. 산토끼 두 놈은 한가로이 마주 앉아 그 물을 할짝거리고. 이따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잎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귀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흙내와 함께 향긋한 땅김이 코를 찌른다. 요놈은 싸리버섯, 요놈은 잎 썩은 내, 또 요놈은 송이. 아니, 아니, 가시넝쿨 속에 숨은 박하풀 냄새로군. --- “만무방” 중에서 앞과 좌우로는 변두리가 까마아득하게 퍼져나간 넓은 들이, 이편짝 한 귀퉁이가 나지막한 두 자리의 야산(野山) 틈사구니로 해서 동네를 바라보고 홀쪽하니 졸아 들어온다. 들어오다가 뾰족한 끝이 일변 빗밋한 구릉(丘陵)을 타고 내려앉은 동네. ‘쇠멀’이라고 백 호 남짓한 농막들이 옴닥옴닥 박힌 촌 동네와 맞닿기 전에 두어 마장쯤서 논 가운데로 정자 나무가 오똑 한 그루. 먼빛으로는 조그마하니, 마치 들 복판에다가 박쥐우산을 펴서 거꾸로 꽂아놓은 것처럼 동글 다북한 게 그림 같아 아담해보이기도 하지만, 정작은 두 아름이 넘은 늙은 팽나무다. 멍석을 서너 잎은 폄직하게 두릿 평평한 봉분이 사람의 정강이 하나 폭은 논바닥에서 솟았고, 저편 가로다가 울퉁울퉁 닳아빠진 옷뿌렁구를 드러내놓고서, 정자나무는 비스듬히 박혀 있다. --- “정자나무있는 삽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