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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별기
1954년의 한국시 인육시장의 점경 실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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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이요. 삼월이요. 각혈이다.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 가지고 약 한 제 지어 들고 B라는 신개지(新開地) 한적한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그러나 이내 아직 기를 펴지 못한 청춘이 약탕관을 붙들고 늘어져서는 날 살리라고 보채는 것은 어찌하는 수가 없다. 여관 한등(寒燈) 아래 밤이면 나는 늘 억울해했다. 사흘을 못 참고 기어이 나는 여관 주인영감을 앞장세워 밤에 장고소리 나는 집으로 찾아갔다. 게서 만난 것이 금(錦紅)이다. --- “봉별기” 중에서 저널리즘과의 작별과 시의 우위적인 독립을 위하여 『시작』지는 계간의 형식으로 1954년에 걸쳐 본호를 합해 3집을 발간했다. 제1집 ‘주장(主張)’란에 본지는 어디까지나 시인들의 지도적인 역량과 의욕과 작업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며 순수한 공동체로서 조직되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성실한 시의 잡지로서의 정당한 주장이라는 것을 나는 수긍하는 바이다. 따라서 제1집과 제2집에 발표된 시는 현재 한국에서 활약하고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전 시인의 반수에 가까운 26명이며, 이는 즉 금년도에 있어서의 한국시의 경향과 수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1954년의 한국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