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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열린책들 세계문학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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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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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 헤르만과 도로테아

저자 소개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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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다른 상품

역자 : 김인순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칼스루에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뒤 함부르크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현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번역 일을 하고 있다. 논문으로 「로베르트 무질 소설에 있어서 비유의 기능」 등 다수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도적 떼』, 클라우스 바겐바흐의 『카프카의 프라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법』,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아』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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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50.44MB ?
ISBN13
9788932960241
KC인증

책 속으로

〈예술의 규범을 좇는 사람은 결코 졸렬한 것이나 조악한 것은 만들어 내지 않네. 그 대신 누가 뭐라 말하든, 모든 규범이 자연의 진실한 감정과 진실한 표현을 파괴하는 것도 사실일세!〉 -- -p.23

〈나는 숭고한 용사처럼 검을 빼어 들어, 파르르 떨며 서서히 꺼져 가는 생명의 고통으로부터 내 영웅을 단칼에 해방시켜 주고 싶네. 그리고 그 자유로워진 반신(半神)의 뒤를 쫓아 내 영혼을 보내고 싶다네.〉 --- p.136

〈행복했던 시절! 나는 시내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외쳤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났던 시절! 하느님, 어째서 제정신을 차리기 전과 다시 제정신을 잃어버린 후에만 행복하도록 인간의 운명을 정하셨습니까.〉

--- p.150

줄거리

베르테르는 지적이고 다정하며 감정이 충만한 청년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정신은 기존의 모든 규범과 인습, 편협한 사고방식으로부터 감정의 해방을 부르짖는다. 어느 날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한 베르테르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조신하고 현명하며 자신의 의무와 역할에 충실한 로테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걸 알기에 베르테르는 절망하고 고뇌한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지순한 사랑은 마치 죽을 걸 알고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멈출 줄 모른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에서 질투와 증오는 점점 커져만 가고, 절망 속에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베르테르는 결국 죽음을 통해 이루지 못할 사랑을 영원한 사랑의 송가로 승화시킨다.

출판사 리뷰

작품에 대하여
베르테르는 지성적이면서도 몽환적이고 다감한 젊은이다. 그는 우아하고 청순한 아가씨 로테를 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괴테는 베르테르의 고매한 정신과 자유분방함을 통해 이성의 굴레에 억눌린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을 폭발적으로 그려 냈다. 사회적 제한과 규범을 뛰어넘는 폭풍 같은 열정과 지순한 사랑의 완성을 위한 죽음은 당시의 편협한 계몽주의 사회에 대한 감정의 반란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순수한 사랑의 열정과 아픔을 가슴 절절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1774년 출판과 동시에 일약 유럽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그야말로 질풍처럼 문단을 휩쓸었다. 젊은 괴테의 열렬한 사랑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은 인간 본연의 충만한 감정과 개성의 존중, 사랑과 감정의 예찬, 대자연에 열광하고 하나가 되려는 질풍노도 문학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추천평

매혹적인 감정과 예술에 대한 조숙한 이해가 거의 일회적으로 결합하여 낳은 걸작.
토마스 만
베르테르의 공적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렴풋이 예감하지만 분명하게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정열과 감각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는 데 있다.
야코프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

리뷰/한줄평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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