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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한
소설가의 시인평 분토 딸의 업을 이으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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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宣祖) 임진의 겪은 전고미문의 국난 때문에, 삼천리 강토가 한 덩어리 재로 화하고 국력이 극도로 쇠약하고, 파루폐옥만 덩더렇게 늘어 있는 참담한 형태를 이룬 지 수년.
선조대왕 승하하고, 그 아드님 광해군이 즉위한 뒤에는 이 용감한 청년왕은 무엇보다도 국도 부흥에 전력을 다하였다. 피폐된 국민의 힘으로는 좀 당하기 어렵기는 어려웠지만, 이 임금 치정 십사 년간에 이전 임진 때에 한 더미 재로 화하였던 국도는 다시 고루거각이 즐비하게 되고 아름다운 서울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 임금은 국도 부흥에 전력을 쓰느라고, 부왕시대부터 재상들 새에 차차 왕성하여 가는 당쟁(黨爭)을 종언하고 억압할 겨를이 없었다. --- “장사의 한” 중에서 (몇 해 전 모지[某誌]의 부탁으로 그 지상[誌上]에 연재하려고 쓰려다가, 총독부 당국의 금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야기다. 지금 좋은 기회를 얻어 다시 착수하게 된 것은 오직 작가인 나 한 사람의 기쁨만이 아닐 것이다.) 출발[出發] 1 "오늘두 신발 한 켤레만 밑지었군." 제 발을 들어 보았다. 지푸라기가 모두 헤어져서 사면으론 수염을 보이는 짚신. "신발 서른 뭇을 허비했으니 벌써 삼백 일인가. 그동안의 소득은 단 두 뿌리." 산삼(山蔘)을 구하고자 편답하는 삼백여 일에 간신히 두 뿌리를 얻고는 그냥 헛애만 쓰는 자기였다. 문득 눈을 들어 맞은편을 건너다보았다. 계곡(溪谷) 하나를 건너서 맞은편에 보이는 역시 깎아세운 듯한 벼랑에는 나무가 부접할 흙도 없는 양하여 겨우 잔솔 몇 포기와 지금 바야흐로 단풍 들어가는 낙엽수 몇 그루가 석양볕 아래서 잎을 풍기고 있다. --- “분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