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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창작
소설의 장래와 인간성 문제 동시대인의 거리감(9월 창작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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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학예부에서 지난번 활동적인 중견 작가 8씨에게 창작상 신조와 및 이즈음 논의적 중심이 되어 있는 리얼리즘에 대한 생각을 문의하고 그 기고를 해란(該欄)에 게재한 바 있었는데, 이들 8씨의 작가 중에서 이효석, 이북명, 안회남, 조벽암, 엄홍섭 제씨 등의 대부분의 작가가 7월호 내지는 8월호의 잡지에 창작을 발표하고 있으므로 최근의 창작계를 한번 살펴 보는 것의 흥미는 더욱 더 큰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작가들의 작품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그의 에술적 감흥의 고저를 측량하는 흥미 외에 또는 혹은 작가들이 그의 창작적 신조로 선언한 것과 작품 그것을 대비해 보고 과연 그의 창작적 신조는 작품 속에 얼마나 침투되어 있는가, 또는 창작상 신조의 대부분을 좌우하는 그의 세계관이 정당치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저열하여 있지는 아니한가를 살펴볼 수 있는 외에, 작가의 창작 방법에 대한 이해의 정도, 또는 세계관과 창작 방법의 관계 등등에 있어서도 의의 있는 해결의 암시를 던져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최근의 창작” 중에서 역사가 전환기를 맞이할 때마다. 인간성의 문제가 새로운 각도로부터 다시금 상정되게 되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 전환기란 말할 것도 없이 부정되어야 할 낡은 시대와 긍정되어야 할 새로운 시대의 중간에 낀 기간을 이름하는 것인데, 이러한 때 새로이 역사의 계단을 찾아올 시대는 전대의 기초가 되어 있던 낡은 인간을 부정하고 새로운 인간 이념을 창조 확립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가 낡은 시대를 청산하고 과도적인 전환기를 아름답게 극복하려면 여하한 의미에서든지 자신의 가운데 휴머니즘을 포함치 아니하고는 그의 임무를 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제출된 인간성의 문제란 일방 인간 이상의 상망(想望)이라는 각도로부터, 기존하는 인간형의 극복과 당래(當來)할 인간의 새로운 이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 될 수 없었다. --- “소설의 장래와 인간성 문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