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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초
보석반지 설날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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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왔다가 겨우 세 살을 먹고 쓰러져 버린 『반도공론』이란 잡지 본사가 종로 네거리 종각 옆에 버티고 서서 이천만 민중의 큰 기대를 받고 있을 때였다.
『반도공론』의 수명은 길지 못하였으나 창간하여서 일 년 동안은 전조선의 인기를 혼자 차지한 듯이 활기를 띠었었다. 『반도공론』이 그렇게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그때 그 잡지의 사장에 주필까지 겸한 이필현씨가 사상가요 문학자로 당대에 명망이 높았던 것이요 또 하나는 『반도공론』은 여느 잡지와 색채가 달라서 조선 민중의 기대에 등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앞에는 아름다운 이상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 “무명초” 중에서 좋든지 그르든지 또는 크든지 작든지간에 한번 젊은 가슴을 애틋이 끓게한 사실은 좀처럼 스러지지 않는다. 나는 그 눈을 몹시 쏘던 보석 반지와 그 반지의 주인공인 혜경이를 내 기억에 있는 동안에는 잊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지금 몸을 붙여 있는 이 최 목사 집에 가정 교사로 들어온 지 벌써 삼 삭이나 되었다. 철없는 어린 것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리 괴로울 것이 없으나 남의 지배하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젊은 나로서는 여간한 고통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바요 또 어떠한 고통이든지 견디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잘 깨달은 나는 모든 감정을 꿀꺽꿀꺽 참고 최 목사의 명령대로 하여 왔다. --- “보석반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