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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의 노래
가정 음악에 대하여 가정과 음악 째즈 음악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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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나던 전후의 일기를 더듬어가며 눈물겨운 추억의 이 추억의 글을 쓴다.
1919년 봄에 나는 미국 유학을 해보겠다고 섣불리 여권 신청을 했다가 실패를 하고, 2년 후에 다시 독일 여권을 주선하다가 또한 실패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양행(洋行)이란 것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며, 또 혹시 이 다음에 사주팔자가 좋아서 백만장자가 된다면 그때에는 별문제려니와, 그렇지도 못한 나로서는 부질없이 양행이란 허울좋은 이름 아래에서 팔자에 없는 객고(客苦)를 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같이 단념하고 지내기를 10년 가까이 한 1931년 봄 3월 12일에, 나의 마음에는 뜻하지 않은 커다란 변동이 생겼던 것이다. 그때의 심적 변동이란, 거의 잊어버리게 된 지금에 있어서 새삼스럽게 그것을 회상하고 싶지도 않고, 또 여기에 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하여간 그때의 나로서는 평정한 생활을 해갈 수 없었던 것만은 지금도 잘 기억하는 사실이다. --- “고별의 노래” 중에서 왕년, 세계대전이 끝난 후 뒤이어 일어난 소위 째즈 음악은, 얼만전까지도 이것은 저열한 악취미를 발휘하는 말하자면 신성한 음악에 대한 반역자로서 또는 세기말적 퇴폐한 사상과 정신을 양출(釀出)하는 이단자로서 일부 세인의 배척을 받아 왔으며 심지어 덴마아크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국법으로 이 음악의 연주를 금지한 일까지 있었지마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금일에 있어서는 째즈는 이미 전세계 악단을 석권하다시피 하면서 끊임없이 일정한 방향으로 착착 진전하여 악단적 지보(地步)를 확고히하는 동시에 세계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청춘 남녀의 정열을 태울대로 태우며, 그네의 맥박과 심장의 고동을 끝없이 고조시킴은 왠 까닭인가? 사람은 본시 선천적으로 음악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리듬 속에서 호흡하고 리듬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적(悠寂)한 고전이나 낭만적 음악은 기계문명의 정복하에 완전히 포로가 된,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상으로나 위안과 휴양을 주기에는 너무나도 그 대가가 과중하여 어떤 때는 로맨틱한 몽환속에서 우리를 잠들게 하는 때도 많을 것이다. --- “째즈 음악에 대하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