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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곡
관현악의 이야기 리스트의 국제적 연애 월광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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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명하던 피아니스트가 자기 생전에 가장 많은 환영을 받은 때는 자작(自作)한 〈전쟁의 곡〉을 연주하던 때입니다. 그는 그 후 어느 지방에 연주 여행을 하든지, 반드시 이 악곡을 연주해 달라는 간망이 끊기지 않았을이만큼 이 곡조는 유명했던 것입니다. 그 자신은 무슨 이유인지 이것을 연주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청중측에서는 다른 곡조는 다 집어치워도 좋으니, 이 〈전쟁의 곡〉만은 꼭 연주해 달라고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이 한 곡조만 연주 곡목 중에 넣는다면, 그는 도처에서 무조건하고 초만원의 호성적을 얻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도회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광산동(鑛山洞), 이 곳은 노동촌인 위에 교통이 몹시 불편하여, 음악가의 내방이라고는 있을 까닭이 없었고, 또 설혹 가끔 연주회가 있댔자 그것은 5류, 6류 이하의 연주가들인 까닭에 그 동네 사람들은 실로 음악에 몹시 굶주렸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의외의 보도는 온 동네 안을 물끓듯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 “전쟁의 곡”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의 옛날입니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조차 쓸쓸한 가을 저녁, 친구의 집에서 저녁밥을 끝내고 난 베토벤은 쌀쌀스런 달빛을 온몸에 받으면서, 고요히 초저녁잠에 들어있는 본 성(城)의 거리를 소용했던 것입니다. 그때의 본 성으로 말하면, 좀처럼 얻기 어려운 큰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물을 것도 없이 천재의 대작곡가 베토벤이 이 성에서 나고, 또 그의 이름이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온 세계에 높아가는 까닭이었습니다. --- “월광곡”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