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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록
문단 십오년 이면사 신문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나 적막한 예원 - 조선예술에 생각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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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はやまひおもしいもおと(모병중[母病重], 매[妹])’
‘ははもどくすくこいいもと(모위독[母危篤] 직행[直行], 매[妹])’ 두 장의 전보. 나는 가슴이 선뜩하였다. 이틀 전에 어느 시골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새벽차에 돌아와서 집에 들어서는 참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보 두장. 그 새 사십여 시간 동안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이야기 때문에 한 잠도 자지 못하였다. 그 피곤한 몸을 좀 쉬려고 어서 자리를 찾아오느라고 집으로 뛰쳐든 때에 의외에도 이 두 장의 전보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보의 날짜를 보매 한 장은 그저께 저녁, 또 한 장은 어제 아침이었다. 그저께 저녁에 전보를 놓고 여컷 새벽차를 기다려 보아서 안 오니까 재차 전보를 친 것이 분명하였다. 어제 아침에 전보를 놓은 뒤에는 아직 다시 전보가 안 오는 것을 보니 평양(平壤)서는 내 불효(不孝)를 욕하면서 내게는 다시 전보도 안 친 셈인 모양이다. 이틀 동안을 자지를 못하여서 몹시 신경이 둔하게 된 나는 이런 급한 경우에 두서를 차리지를 못하였다. "여보 어떡해야겠소?" "아침 차로 가셔야지요." --- “몽상록” 중에서 - 〈창조(創造)〉 잉태(孕胎)(여(余)를 주인공(主人公)으로 삼고) 서언[緖言] 여기 쓰려 하는 바는 여가 문필에 종사하기 비롯한 1918부터 오늘날까지의 문단의 이면사인 동시에 또한 조선 문화사의 이면의 일단이라 할 수도 있다. 제목은 여를 주인공으로 한 문단의 변천사라 하였지만 또 물론 여의 자서전이 아니다. 문단의 변천사라 하였지만 또한 순전히 문단의 변천사뿐도 아니다. 문예 애호가들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알고자 하는 바인 문인들의 왕래며 그 갈등이며 또한 1918년(1918년이라는 해는 기미사건 전의 해로서 그때부터 지금까지라 하면 즉 ‘전기’부터 ‘후기’라 하는 특수한 시기를 말함이다.)부터 오늘날까지의 일부 청년들의 왕래며 조선의 문화를 말하는 신문 잡지의 출생의 이면사 등을 아울러 말하려 하는 것이다. 시골 구석에서 소설이나 쓰고 방탕한 유흥이나 하여 그 전생을 보낸 여로서는 물론 견문도 부족하고 졸필인 혐도 없지 않으나, 여가 본 한계에서는 아직껏 1918년부터 오늘까지의 변천사를 쓴 사람이 없었으므로, 졸필임을 탓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탓하지 않고 이에 붓을 잡기로 한 것이다. --- “문단 십오년 이면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