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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한 문단 그 타개책은?
역사와 사실과 판단과 사료에 대한 작자의 입장을 논함 계유·병자·정축(사육신과 남추강) 자기의 창조한 세계 -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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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측[文人側]의 견지[見地]에서
비행기의 발달이 지지[遲遲]할 때에 조종자와 제조자는 제각기 그 책임을 저편 쪽으로 밀었읍니다. 조종자 측은 비행기가 불완전하다 하였읍니다. 제조자는 기술이 서툴다 하였읍니다. 이리하여 서로 그 책임을 자기가 지지 않으려 하였읍니다. 어떤 정도까지는 발달된 지금에 앉아서 그 양자의 말을 관찰할 때에 양자에 다 일리가 있는 것은 수긍치 않을 수가 없읍니다. 물론 기계도 불완전하였겠읍니다. 그리고 또한 기술도 서툴렀을 것입니다. 도대체 사람이란 어떠한 일이든 그 결과가 시원치 않을 때는 그 책임을 남에게 밀려 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이렇다 저렇다 시비할 수는 없습니다. --- “부진한 문단 그 타개책은?” 중에서 며칠 전 몇몇 친구가 어떤 정자에 모여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 가운데 화제가 우연히 ‘역사상 사실의 사실적 면’과 ‘그 판단적 면’에 급하였다. 그리고 그 예로서 春園[춘원]의 「端宗哀史[단종애사]」와 필자의 단편 史譚[사담] ‘首陽[수양]’이 화두에 올랐다. 그 좌석에는 「단종애사」의 작자인 춘원도 있었고, 그 밖에 月灘[월탄], 白華[백화], 岸曙[안서], 巴人[파인] 등등 數友[수우]가 있었다. 춘원과 월탄은 그 당시 (문종-단종-세조)의 일을 역사상에 나타난 그대로 보는 것이 옳다는 파였다. 안서와 백화와 필자는 그 반대의 파였다. 역사상의 ‘사실’은 무론 후세인이 굽힐 수 없는 배다. 후세인은 전대의 일을 보지 못했으니 전대 사가의 기록을 신뢰할 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판단이라 하는 것까지 전대 사가에게 구속될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이 반대의 골자였다. 다시 말하자면 단종 당시의 사실적 면(즉 문종이 어린 세자를 皇甫仁[황보인]이상 늙은 재상들에게 부탁한 일, 부탁받은 재상들이 새 임금 단종을 극진히 섬긴 일, 수양대군이 이 늙은 재상을 꺼리고 싫어하던 나머지에 종내 癸酉年[계유년] 變亂[변란]을 일으킨 일, 그런 뒤에는 스스로 군국의 최대 권위자가 된 일, 그 뒤 이태를 지나서 단종은 애착 많은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물려드리고 당신은 퇴위한 일, 계유년 변란시에 해를 받지 않은 다른 顧命[고명] 遺臣[유신]들은 이 새 임금께 臣仕[신사]하고 하야치 않은 일, 明使[명사] 來朝時[내조시]에 상왕의 유신 〈現王[현왕]의 現臣[현신]〉들이 상왕을 옹호하고 반역 운동을 일으킨 일, 이 일이 미연에 발각되자 상왕은 魯山君[노산군]으로 降封[강봉]이 되고, 반역을 도모한 선비들은 친국을 당한 일, 왕은 당신을 배반한 그 역신들을 무척도 아껴서 누차 心降[심강]하기를 종용한 일, 그 뒤에 錦城大君[금성대군]의 사건이 생기며 강봉한 노산군에 賜死[사사]한 일. 이 왕의 일대는 이조 5백년사에 있어서 武備[무비]며 국토 확장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역사를 가진 일 등등)은 우리가 보지 못한 일이며 문헌에 의지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사실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판단까지 고인에게 구속될 의무는 없다. --- “역사와 사실과 판단과 사료에 대한 작자의 입장을 논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