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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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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로 하자면, 좋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연천 선생처럼, 또 그 시절처럼 임의롭고 정답고 한 줄은 아예 모르겠었다.
연천 선생이 떠나기 조금 전에, 풍금을 한 채(나중에야 알았지만, 재갸 사사돈으로, 정표삼아) 사 들여논 것이 있었다. 우리는 두고두고 그 풍금에 맞추어,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이런 창가를 배웠었다. 그런 때면 문득, 가고 없는 연천 선생이 생각이 나서, 활발스런 ‘학도야 학도야’가 이상히 구슬프곤 하기도 했었다. 근자엔 듣자니 아직도 전주땅 어딘가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호호 백발에, 평화한 여생을 지내고 있다고. 요란을 떨면서 뒤끓어 구경, 견학을 가던 그 기차라는 게 무어냐 하면, 소위 모래차라고, 흙과 자갈을 파 실어나르는 뚜껑 없는 화물차였었다. ‘솜리’서 군산까지 지선이 놓이는데, 공사가 거진 준공이 되어 모래차 그놈이 사석을 실어다가는 연해 선로바닥을 돋구던 참이었었다. --- “회(懷)”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