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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사제(奇談四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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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 최석(崔碩)과 팔마비(八馬碑)
옛날 부터 명관(名官) 노릇, 더욱 지방의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이름을 내자면 첫째는 청렴(淸廉)해야 하고, 둘째로는 애민(愛民) 즉 백성을 잘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말이 쉽지 지방관으로 돌아 다닐것 같으면 청렴 애민이란 실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 하다가는 탐관(貪官)으로 이름을 더럽히게 되고 까딱 잘못하면 오리(汚吏)로 봉고파직(封庫罷職)을 당하고 마침내는 생명까지 끊게 되는 것이 옛날의 목민관의 처지였다.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건만 그 많은 목민관들 중에는 탐관오리가 많으면 많았지 청렴한 사람이 흔하지는 않았다. 때는 고려 충렬왕(忠烈王)때 벌써 칠백 여년이 가까운 옛날이었다. 최석(崔碩)이란 이가 승평부(昇平府=지금의 개풍[開豊] 지방[地方]) 부사(府使)가 되어 임기 삼년 동안에 애민적자(愛民赤子)로 그야말로 백성을 자기 자식 같이 생각하여 오로지 그들의 기쁨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 온갖 무슨 일이고 간에 자기 몸을 희생하여 가며 애를 써서 일하였다. 이런 선정(善政)이 좋은 음덕(陰德)이 되었던지 그는 임기(任期)가 막 끝나자 마자 내직(內職)으로 승차하여 비서랑(秘書郞) 벼슬에 올라 송경(松京=지금의 개성)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 “기담사제(奇談四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