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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처봉생(絶處逢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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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대왕 (肅宗大王) 즉위 하신 후 십여년에 경상도 안동부원면 운학동(慶尙道安東府院面雲鶴洞)에 한 사람이 있으되 송은 정(鄭)이오 이름은 박옥(?玉)이다. 나이 사십에 이르되 슬하에 일점 혈육 없이 부인 유씨로 더불어 자탄 왈 지금껏 자식이 없음은 선영행화 절로 끊어질 터이오니 인자된 도리에 불효 막심 하다 하고 주야로 슬퍼하더니 하늘로부터 한 선관이 백학을 타고 부인 전에 일개 옥동(玉童)을 주고 완연히 올라 가거늘 놀래어 깨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부인이 마음에 기꺼이 여기어 가군을 청하여 몽사(夢事)를 의논 하더니 과연 그날부터 태기 있어 십삭 만에 순산 생남하니 공중으로 한 선녀가 내려와 옥병(玉?)으로서 향수를 기우려 옥동을 씻겨 누인후 부인전에 이르되
『이 아이 이름은 수정(壽政)이라, 일후에 귀히 될 아기오니 잘 길러 영화 보라.』 하고 문득 간데 없거늘 부인 양위 전후 몽사와 신기함을 못내 기뻐하였다. 아기 점점 자라매 용모가 비범하여 그 양명한 골격과 선풍도골(仙風道骨)이 인간 인물로 보이지 않더라. 호사다마(好事多魔)요 흥진비래(興盡悲來)로다. 가군(家君)이 우연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로다. 인하여 세상을 버리니 부인이 수정을 안고 애통(哀痛)하여 마지 않다가 초종을 대강 예로 치른 후 다만 수정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더니 수정이 나이 八[팔]세에 이르매 영민총혜(英敏聰慧)하여 청연의 문장과 두목지풍채(杜牧之風彩)를 본받어 문사간에 배운지라 나이 十六[십육]세에 이르러는 시서백가서(詩書百家書)를 무불통지하고 글씨는 이적선(李適仙) 복황씨(伏皇氏)와 소동파 적벽부(蘇東坡赤壁賦)를 압도(壓倒)하게 지었더라. 이때 나라에서 과거를 보여 문필과 인재(人材)를 간택하신다는 기별을 듣고 모친께 여짜오대 과거 보기를 청하니 부인이 가로대 --- “절처봉생(絶處逢生)”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