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 터치, 크레마원 기본뷰어 이용불가
|
두 순정(純情)
|
|
산중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절간의 밤은 초저녁이 벌써 삼경인 듯 깊다.
웃목 한편 구석으로 꼬부리고 누워 자는 상좌의 조용하고 사이 고른 숨소리가 마침 더 밤의 조촐함을 돕는다. 바깥은 산비탈의 참나무숲, 솨아 때때로 이는 바람이 한참 제철 진 낙엽을 우수수 날려 흐트린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이어 어디선지 모르게 싸늘한 찬기운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등잔의 들기름불을 위태로이 흔들어놓는다. 가느다란 등잔불이 흔들릴 때마다 아랫목 벽에는 노장의 검은 그림자가 커다랗게 얼씬거린다. 이야기를 시초만 내다가 말고서 합장을 하고 눈을 감고 앉았는 노장은 언제까지고 움직일 줄을 모른다. 머리는 곱게 밀어 맨살같이 연하다. 수굿이 숙인 그 머릿길 없는 머리와 이마 위로는 무엇인지 모를 슬픔이 흐르는 듯 드리워 있다. 하얗게 센 눈썹이 갖다 붙인 것 같다. 길기도 길어 한 치는 넉넉 되는 성부르다. 은실을 심은 듯 고운 수염이 그리 터북하지 않아서 더욱 해맑다. 얼굴은 가는 주름살이 골고루 덮이고 띠끌 하나 없이 몹시도 청아하다. 그 청아한 품이 지나치게 잘 그린 그림같이 방금 숨을 쉬는 산 사람의 얼굴인가 싶질 않다. 그렇거니 하고 보노라면 어쩌면 숨도 하마 쉬지 않느니라 싶어진다. 숙인 이마, 감은 눈, 합장한 손, 모두 저 오랜 옛적부터 이렇게, 그리고 앞으로 영겁(永劫)까지 이렇게 이마를 숙이고 눈을 감고 손을 합장하고 앉았을 한 폭의 슬픈 그림이 아니던가 하는 환각(幻覺)을 일으킬 듯 정적의 한동안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혼자 어떤 내력 모를 비극의 전설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이 노승의 그렇듯 비애가 흐르는 정적의 풍모에만 온갖 정신이 쏠려, 그가 꺼내다가 만 이야기 끝을 기다리기도 잊어버렸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윽고 노장의 입술이 가느다랗게 움직이면서 소리도 들릴락말락 "나아무아미타아불, 관세음보살!" 말은 염불이나 음성은 탄식하듯 하염없다. --- “두 순정(純情)”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