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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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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초부터 원고의 청탁을 받은 것이 열 군데. 두 곳의 수필과 여덟 곳의 창작이었으나 하는 수 없이 두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소품과 두 편의 수필을 될 수 있는 대로 부탁받은 차례로 이럭저럭 썼을 뿐이다. 이것이 최대한도의 정성이었다. 빈한한 머리 속을 아무리 짜내도 한달에 열 편에 가까운 독립된 창작은 솟아날 수 없는 까닭이다. 낮을 완전히 빼앗기고 밤만을 가지게 되는 잡무의 몸에 신선한 정력도 있을 리 없지만 그보다도 더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겨울 벌판같이 한산하고 늙은 유방같이 고갈하고 부대낄대로 부대껴 시심(詩心)을 잃게 되는 머리 속에 윤채 있는 이야기가 솟을리 만무하다. 설혹 이야기의 싹이 뾰족이 솟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성장하고 발효한 여가가 없이 어느결엔지 말라 버리는 수도 있다. 시들시들한 끄트머리가 머리 속을 데굴데굴 굴다가 한달쯤 지나면 형해(形骸)도 없이 온전히 사라져 버린다.
--- “북국춘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