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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기와 박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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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御史)로서 많은 일화(逸話)를 남겨 놓은 사람 중에서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같은 이가 없고, 일화 가운데에도 통쾌하고 의분에 불타는 일을 한 사람이 박문수 아니고는 또 없었다.
그는 인정(人情)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의분(義憤)에 넘쳐 흐르는 사람인 까닭에 그가 우연한 일로 진주(晋州)에서 겪은 전후 사실(前後事實)이 공교롭게도 우리가 자랑하는 춘향전(春香傳)의 내용과도 똑 같으므로 여기에 춘향의 사실과 비슷한 원홍장(元洪裝) 이야기를 소개하는 김에 그 내용을 기록하여 여러분과 더불어 실컷 웃어나 볼가한다. 그가 열일곱살 되었을때 그의 외삼촌이 진주부사(晋州府使)로 있었다. 그는 외삼촌이 있는 진주로 찾아 내려가서 얼마동안 지낸 일이 있었다. 부사의 생질(甥姪)이요 나이 열일곱의 소년으로 글 잘하고 얼굴이 잘났으니 그의 뒤에 어찌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없었으랴. --- “급수기와 박어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