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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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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一], 최석(崔碩)과 팔마비(八馬碑)
옛날부터 명관(名官) 노릇, 더욱 지방의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이름을 내자면 첫째는 청렴(淸廉)해야 하고, 둘째로는 애민(愛民) 즉 백성을 잘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말이 쉽지 지방관으로 돌아 다닐것 같으면 청렴 애민이란 실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 하다가는 탐관(貪官)으로 이름을 더럽히게 되고 까딱 잘못하면 오리(汚吏)로 봉고파직(封庫罷職)을 당하고 마침내는 생명까지 끊게 되는 것이 옛날의 목민관의 처지였다.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건만 그 많은 목민관들 중에는 탐관오리가 많으면 많았지 청렴한 사람이 흔하지는 않았다. --- “기담사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