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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전 초
B녀의 소묘 기차와 박 노인 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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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용 이런 소리들을 한다. 여기의 개천이란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요 용이란 그를 추느라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면 덮어놓고 양반이라고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양반은 아니다. 그들은 중인이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판무식꾼으로 여덟 살이라든가 열 살이라든가에 진 지게를 죽던 그 순간까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농군이었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 또한 시집오던 날부터 짓기 시작한 새벽 밥을 역시 죽던 며칠 전까지 지었었다. 집 가문이 없으니 개천이요 조상에도 국록 먹은 사람 하나 없고 하다못해 면서기 하나도 못 얻어 했으니 개천이란 말이요 시궁창이란 말이다. --- “농부전 초” 중에서 기차와 관련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편지를 받고 나니 까마득히 잊고 살아온 박 노인 생각이 머리에 붕 떠오른다. 해방 전 일이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해서 닿을 수 있는 K역에서도 한 십리 동쪽으로 들어간 ‘궁말’이란 산기슭 두 집 뜸에 살고 있었다. 아내 말을 빌리면 객기였지만 내 딴에는 농민 문학을 하자면 농촌에 들어가서 농민들과 생활을 같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이 ‘객기’요 ‘패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젊었었다. 레이몬드의 「농민」과 같은 4부작을 써서 일약 문단을 한번 뒤집어놓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 “기차와 박 노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