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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창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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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 씨나 유진오 씨나는 필자와 탄생 지반이 비슷한 때문에 씨 등의 작품을 비평하는 데는 언뜻 생각하면 퍽 도움이 되고 수월할 것 같으나 정작 손을 대고 보면 오히려 지장이 되고 불편이 되는 점이 적지 않다. 탄생 지반이나 생장(生長)한 문학의 고향이 같거나 비슷하다고 하여도 물론 두 분은 모두 나의 선배다. 그러므로 씨 등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깊고 소상하게 나는 씨 등의 걸어온 길과 걸어가는 길을 주목하여 관찰하고 있다. 새 달의 잡지를 목차만 쭈르르 살펴보다가 씨 등의 이름을 발견할 때에 소설의 제목만 보면 씨등이 무엇을 썼는지는 퍼뜩 생각할 수 있다. 읽어보면 대체로 주제나 제재나가 생각했던 바와 과히 어그러지지 않는다. 작품을 읽어 가다가도 작자가 어느 부분에서 붓방아를 찧고 있었는지 어느 구절을 억지로 넘겨 버렸는지 또는 작자의 창작 심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내깐으론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씨 등의 작품을 비평함에 도움이 되고 또 장애도 된다는 것이다.
경향 문학이 위기에 부딪혔을 때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헤쳐 나가겠는가 하는 것은 한씨나 유씨나 또는 독자나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때를 당하여 유씨나 필자는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 한씨가 더듬더듬 씨의 세계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유씨나 필자는 작년 금년으로 겨우 창작의 붓을 듦에 이르렀다. 오늘날에 와서 씨 등이나 필자가 과연 어떠한 방면으로 자기의 문학을 끌고 갔는가, 어느 곳에서 작자의 마음대로 주무르고 요리하고 지배할 수 있는 작품의 세계를 발견하였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하나의 비평적인 관제가 될 수 있다. --- “11월 창작평”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