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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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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취미’를 가지거나 죽음에 취미를 가지거나 그것은 누구나의 자유로운 동등한 권리이다. 삶에‘취미’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죽음에 ‘취미’를 가지고 죽는 사람을 논란할 권리와 자격은 조금도 없는 것이다. 자살의 길을 패부의 길이라고 비난한다면 자살자의 입장으로서는 죽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가며 살려고 애쓰는 사람의 가련한 꼴이야말로 그대로가 바로 패부의 자태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이 삶의 도피라면 삶은 죽음의 도피가 아닌가. 어떻든 삶에 ‘흥미’를 잃은 때에 삶과 대립되는, 그러나 동등한 지위에 있는 죽음의 길을 취함은 극히 정당한 일이다. 그는 제삼자의 어리석은 비판을 초월하여 높게 서는 것이다.
마르크시즘과 자살. 마르크시즘은 삶 이후의 문제이다. 혹 삶이 마르크시즘 이전의 문제인 만큼 죽음도 마르크시즘 이전의 문제이다. 마르크시스트의 자살 결코 우스운 현상이 아니다. 비웃는 자를 도리어 가련히 여겨 자살한 마르크시스트의 얼굴이 창백한 웃음을 띄우리라. 밤이 맞도록 날이 맞도록 이렇게 생각하고 되풀이하고 고쳐 생각하여 이틀 동안에 주화는 어떻든 처음부터 계획하였던 그의 얻고자 한 결론을 얻었다. 마르크시스트인 그가 무릇 마르크시즘의 입장과 범주와는 멀리 멀리 떠난 마르크시스트의 이름을 상할지언정 위하지는 못할 이러한 경지에서 방황하여 그의 요구하는 결론을 얻기 전에 뒤틀어서 꾸며냈던 것이다. --- “프렐류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