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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牧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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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는 인제 돈 소리는 듣기도 무섭다는 듯이 흠칠 하고 놀라시며 얼굴을 모으로 돌리신다.
내 일을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가 벌써 사 년이나 넘었는데 취직을 못 하고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쓰자니 실로 아버지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것도 남과 같이 여유나 있는 돈이면 모르거니와 얼마 되지도 않는 전답을 팔아다 쓰자니 딱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집에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을 어찌하노. 오락기관이 있나, 이야기 동무가 있나, 이렇게 와서 며칠씩 있는 것도 참으로 참기 거북한 노릇이어늘.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서울 같은 도시에 취직을 하고 살으려니까 좀처럼 되지를 않는 것이다. 됨네 하고 속아서 넘어가는 되지도 않는 취직에 운동비만 쓰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시켜 준다는 그 녀석들이 괘씸해서 그만 집어치우고 집으로 내려와 문화주택이나 하나 본때 있게 지어 놓고 라디오, 측음기나 쓱 틀어 놓고 앉아서 소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그러니 위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하나 못한다는 것은 자신으로서는 부끄러운 노릇이어니와, 우선 동네 사람들의 치소란 원 들을 수가 없었다. 속세(俗世)를 벗어난 성자(聖者)처럼 도시를 떠나 청아한 농촌에 파묻히는 것도 누가 그렇게 알아주기만 한다면 오히려 보다 더한 명예가 될는지도 모르겠는데 땅이나 파먹는 무지한 것들이란 이런 것을 알아주지를 못한다. 이건 바로 대학을 졸업하면 반드시 무엇든지 한 자리 해야 되는 줄로만 안다. 공부란 자기 수양을 위해 하는 것이지 취직을 위해 하나?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지경이다. 더 참고 앉았을 수가 없었다. --- “목가(牧歌)” 중에서 |